S# 1 프롤로그 (어느 무서운 공동 묘지)
검은 무지 위에 맑고 경쾌한 풀벌레 소리.
풀벌레 소리가 점차 커지면, 부엉이 소리, 소쩍새 소리,
온갖 산새 소리와 함께 화면이 천천히 밝아진다.
을씨년스럽게 묘지를 비추는 달빛이 잠시 흔들거린다.
카메라 천천히 내려와 시커먼 나무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면
공동묘지가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공동묘지 어딘가에서 땅을 파는 소리.
저 멀리 어둠 속을 달리는 버스의 불빛.
마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공동묘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들 사이로 삽질을 하는 네 명의 인부.
옆에는 검은 관이 경사면을 따라 비스듬히 놓여 있다.
관이 천천히 흔들리더니 관 밑쪽 작은 면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다.
관 옆에서 막걸리 잔을 들이키는 남자,
입가를 닦으며 삽을 들고 일어선다.
순간, 살짝 움직이는 관.
땅을 파던 인부의 곡괭이가 돌에 부딪치며, 깡하는 소리가
메아리쳐짐과 동시에 관의 측면이 드디어 열린다.
눈치를 채지 못하는 인부들.
하얀 천으로 감싸진 발이 굼벵이처럼 삐죽삐죽 기어나온다.
관을 다 빠져나온 시체가 고개를 흔들더니 얼굴에 덮인 천을
걷어내면, 초췌한 처녀의 얼굴. 기묘한 느낌이다.
인부들 너머로 비틀거리며 어슴푸레한 공동묘지를 성큼성큼
걸어내려가려는 처녀.
삽질을 끝낸 한 인부가 처녀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자, 다른
인부들도 따라서 냅다 도망치기 시작한다.
갑자기 인부들을 쫓아오기 시작하는 처녀.
술에 취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도망가자,
목덜미를 잡는 처녀의 손.
놀라 뒤를 바라보는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 쓰러지고 만다.
재현(소리) 관에서 나온 여자는 결국 나의 할머니가 되었다.
그 후부터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장의사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S# 2 읍내거리 (타이틀)
아주 경쾌한 음악.
파랗고 넓은 하늘, 뭉게구름이 하얗게 떠간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할아버지, 장판돌.
"행복한 장의사"라는 타이틀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진다.
읍내거리를 지나가는 할아버지의 자전거.
할아버지의 시선으로 다큐필름을 아무렇게나 이어놓은 것처럼
여기저기 지나가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일상들이 편하게 보여진다.
배달가는 우체부가 처음 자전거를 타듯 뒤뚱거리며 스쳐 지나가고,
화원 옆을 지나는 자전거.
화분에 물을 주던 소화가 할아버지를 보고 인사한다.
복덕방 황지관은 얼굴을 찡그리며 외면하고,
다방에서 나온 미스황과 미스양은 애교스럽게 손을 흔든다.
갑자기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해가 쨍쨍한데 비가 내린다.
화면 전체가 햇볕에 반사되어 떨어지는 빗물, 아름답다.
여전히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
화면 위에 떠오르던 자막이 갑자기 할아버지 눈을 가린다.
이리저리 자막을 피해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그러나 제작자의 자막이 할아버지의 시선을 완전히 가리고,
꽈당 전봇대에 부딪히는 자전거.
타이틀 끝난다.
S# 3 버스 안 (밤)
어두운 국도를 달리는 시외버스 안.
반대편 차선 자동차 불빛에 얼핏얼핏 드러나는 차내, 어둡다.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알아볼 수 없고,
헤드라이트 불빛에 운전수의 뒷모습만 드러난다.
창 밖으로 13번 국도 표지판이 헤드라이트 불빛에 언뜻언뜻
스쳐 지나간다.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검문소, 차를 세우는 헌병.
앞문이 열리며,
버스 안 형광등이 번쩍거리며 켜지고 그제야 드러나는 버스 안.
어깨에 잔뜩 후까시를 넣고 버스에 올라타는 헌병.
헌병의 다리에 찬 링 소리가 처렁처렁 울려 가히 위협적이다.
헌병 (위엄있게, 큰 소리로) 잠-쉬, 검문있껫쉽니다!
긴장된 버스 안, 턱을 치켜올려 힘을 주고 버스 안을 훑고
지나가는 헌병. 철모 그림자에 가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헌병 (힘있게 뒤돌아 서며) 감-삽다!
운전사 (웃으며) 와따 김이병! 너 많이 늘었다! 이제 잘하는데!
계단을 내려가던 헌병, 몸이 뒤틀리더니,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창피해서 얼굴을 가리며 버스에 몸을 숨기자,
모자가 떨어져 굴러가고 배꼽을 잡고 웃는 승객들.
그러나 웃지 않는 두 명의 남자, 재현과 철구다.
다시 출발하는 버스. 차창 밖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S# 4 버스 터미널 (밤)
비가 거세게 내리는 버스 터미널.
대형 버스가 크게 한바퀴 휙 돌아서 멈추면,
힘없이 내리는 재현,
재현 뒤로 맨 마지막에 내리는 철구의 모습도 보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서 있는 철구의 얼굴 위에 빗줄기가 거세게 내린다.
버스가 지나가면서 웅덩이 물을 튀기면 왕창 뒤집어쓰는 철구,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빗물에 얼룩져 보이는 몇 개의 네온 불빛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S# 5 장의사 안채 (밤)
마루에 켜진 희미한 백열전구 빛에 드러난 안채, 고요하다.
마루에 가방을 내려놓고, 방문을 열어보는 재현.
어두운 방안. 아무도 없다.
한참을 방안을 들여다보는 재현.
몇 발짝을 옮겨 할아버지 방 문을 열어보지만 인기척이 없자
힘없이 문을 닫는다.
S# 6 재현의 방 (밤)
불이 켜지면서 드러나는 재현의 방 안.
방안에 앉아 낯익은 물건들을 바라보는 재현.
오래된 사진틀의 사진들. 벽에 걸린 자신의 옷.
벽에 걸린 빗자루.
문 밖을 보면, 여전히 빗방울이 거세게 떨어지고 있다.
담배를 물고 지포라이터를 폼나게 열어붙이는 재현.
하늘 저편이 쩌억 갈라지더니 와르르 천둥이 무섭게 때리면,
마당 저편에 비닐로 씌워진 관이 보인다.
화들짝 놀라 방안으로 물러서는 재현.
S# 7 궁전여관 앞 (밤)
네온간판이 지지직거리며 타들어가듯 깜박거리는 궁전여관 앞.
비를 맞으며 비장하게 걸어오는 철구.
다시 한 번 여관 간판을 확인하고 궁전여관으로 들어간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하더니 네온간판이 불똥을 튀기다가
이내 꺼져버린다.
S# 8 궁전여관 복도 (밤)
카운터를 가볍게 노크해도 대답이 없자 주위를 살피는 철구.
어둡고 음산한 복도.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할머니.
철구 (목소리를 깔고 비장하게) 방 있습니까?
201호 키와 수건, 칫솔을 내밀며 고개를 끄떡거리는 할머니.
철구 얼맘니까? (심각하게)
할머니 (손가락 두개를 펴 보이며 ) ...
철구 (갑자기 부드럽고, 아주 간사하게) 5천원만 깎아 주십시오.
차갑게 고개를 흔드는 할머니.
철구 (다시 심각하게) 그럼 할머니, 요구르트나 두 개 주세요.
온몸에서 빗물을 떨구며 비장하게 복도를 걸어가는 철구.
방문을 열면 뒤엉켜 있는 벌거벗은 남녀가 깜짝 놀란다.
황급하게 닫히는 문. 202호다.
S# 9 궁전여관 방안 (밤)
빗물을 털어내는 철구. 팬티까지 다 벗는다.
의자를 받치고 천장을 점검하더니 가방에서 못과 망치를 꺼내
천장에 못질을 하고, 주저 없이 목을 매다는 철구.
딛고 올라갔던 탁자를 걷어차 버리면, 밧줄이 목에 걸리자마자
혀가 쭉 빠지고, 천둥과 번개가 여관 전체를 울린다.
S# 10 궁전여관 앞 (밤)
여전히 거세게 내리는 빗줄기.
우산을 쓰고 여관으로 오는 대식과 미스 황.
대식 쓰잘데 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나와야 돼!
미스황 (종알종알) 지가 내 서방이야 뭐야!
촌놈, 한밤 중에 썬그라스는 무슨....
미스황이 여관으로 들어가면,
기다리는 대식의 우산에 빗줄기가 요란하게 퍼붓는다.
우산을 접고, 여관 유리에 썬그라스를 비춰보며 폼을 잡는 대식.
S# 11 궁전여관 방안 (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켁켁거리는 철구.
바둥거리며 필사적으로 목에 걸려있는 줄을 풀려고 하지만
뒤로 묶인 줄을 풀 수가 없다.
다급해진 철구, 줄을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철구의 시선으로 보인 창 밖의 읍내 거리.
바람에 흔들거리는 "낙천 장의사" 간판.
이내 힘이 빠져 주루룩 줄을 놓고 매달린 철구,
거의 죽어 갈 것 같다. 다시 힘겹게 줄을 타고 올라가면
"낙천 장의사" 간판.
철구가 무엇인가를 생각한 듯 두 눈을 크게 뜬다.
이때 노크소리, 놀라는 철구.
필사적으로 입을 벌려보려는 철구.
줄을 붙잡고 소리치려 하지만, 켁켁 소리만 난다.
발을 바둥거려 몸을 한 바퀴 돌려보면,
출입문 쪽에 커피 보자기를 들고 뻥한 얼굴로 서 있는 미스 황.
벌거벗고 있는 철구가 다급해져 줄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황급히 자신의 물건을 두 손으로 가린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줄, 쭉 빠져나오는 철구의 혀.
미스황 커..피... 시..켰...어...요?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철구, 온몸이 밧줄에 대롱대롱 흔들린다.
미스황 201호 두 잔이라고 했는데. 202혼가? (나가려하면)
철구 (줄을 잡고 버티며) 사, 사람....살...려!
숨이 넘어갈 듯한 철구.
물건에서 손을 떼고 목줄을 잡아당기면,
철구의 물건을 쳐다보며 히죽히죽 웃는 미스 황.
<사이>
수건으로 거기만 가리고 앉아 떨리는 손으로 커피잔을 드는 철구.
미스황 비 다 맞었나 봐요?
죽었다 살아나서 먹는 커피가 어때요? 죽이죠.
철구 ... (고개만 끄덕인다) 혹시 저 앞에 보이는 장의사 있죠?
미스황 낙천 장의사요?
철구 맞아요. 낙천 장의사.
혹시 거기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그런 말 못 들어봤나요?
미스황 그런 말 못 들어봤는데...
아 맞다! 거기 할아버지가 자전거 타고 가다 전봇대에
꽝해버렸어요!
(부딪치는 몸동작을 하며) 사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요즘 일이 없어요.
근데 아저씨. 0형 맞죠? 그죠?
0형의 90프로가 목매고 자살한데요. 맞죠?
철구 난 A형인데?
미스황 어머? A형은 수면제 먹고 죽어야 하는데...
아저씬 특이 체질인가 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고, 씩씩거리며 들어서는 대식.
철구의 벌거벗은 몸을 보자 눈이 확 뒤집힌다.
다짜고짜 철구의 멱살을 잡으려는 대식.
대식 이런 상녀러 쉐끼가. 너 시방 무슨 짓 혔어.
(미스 황에게) 202호라고 혔잖아! 이 빙신아!
거칠게 미스 황을 끌어내며, 마구 철구를 걷어차는 대식.
커피가 쏟아져 유서가 젖는다.
<사이>
유서를 펼치는 철구.
쏟아진 커피에 잉크가 번져 글씨를 알아볼 수 없다.
S# 12 장의사 할아버지 방
재현과, 할아버지, 고모가 앉아있는 방안.
대식이 문 밖에서 삐쭉거리고 있다.
할아버지 (담배를 피워 물며) 그랑께 이 할애비 아퍼서 온 게 아니고,
장사를 하게 이 땅 팔자고 허러 왔다고?
문 돈으로?
재현 할아버지 아파서 일 못하니까.
할아버지 (말을 끊으며) 대식이 있다!
쟈는 호구냐? (문 밖에 서 있는 대식을 보며)
재현 장의사는 최소한 두 명이 있어야 하잖아요.
할아버지 그랑께 니 오라고 했지!
재현 나한테 장의사 하라고?
나는 시체만 보문 기절해 버리는데.
할아버지 은제?
고모 즈그 아부지 죽을 때?
할아버지 고것은 즈그 아부징께 그랬제!
니는 이것 밖에 할 일이 웃어. 미용사 시다가 무냐?
고모 할아버진 니가 장의사해야 사람된대.
재현 (짜증을 내며 일어선다) 그럼 내가 사람 아니면?
내가 사람 아니면 토끼야? 금붕어야?
고모 (나가려는 재현을 잡으며)
콱 죽여버릴까 보다. 이 망할 놈의 시키야.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어.
하는 척 하다가 빚이라도 갚아 조불문 도망치면 될 거 아냐.
할아버지 뭐가 으째! 이놈의 시키들이 즈그들끼리 다 짜가꼬 와서...
방문을 열고 나가는 재현의 뒤로 들리는 고모의 소리.
고모 (소리)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으며) 아부지는 눈치도 웃어!
쟤 설득 할라문.
S# 13 장의사 가게 안
유리창에 검은 글씨로 "장의 일체. 수의 염가. 24시간 대기.
친절봉사" 등이 선팅되어 있는 장의사.
헛기침을 하던 철구가 한참만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
장의사의 내부가 천천히 보여진다.
한쪽 구석에 쌓여있는 7, 8개의 관과, 만들다 만 꽃상여,
곱게 보라색 보자기에 싸여 정리된 수십 개의 수의,
만장을 달았음직한 대나무와 을씨년스런 지전.
결심을 한 듯 장의사 안으로 들어가는 철구.
철구 계세요! 계세요!
대답이 없자 다시 관을 쳐다보는 철구, 이제사 온몸이 오싹함을 느낀다.
뒤로 통하는 작은 문에서 새어나오는 빛.
문을 열면 시체가 나타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듯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을 살며시 밀어본다.
의외로 안채의 넓고 환한 마당, 마당 한 켠에는 키 큰 미류나무.
미류나무에는 연초록의 새순이 돋아 바람에 흔들거린다.
아주 따사로운 봄날의 마당이다.
마당 밖으로는 넓게 펼쳐진 논이 있고, 초록색의 벌판 뒤로 멀리 산이 보인다.
안채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는 철구.
S# 14 장의사 마루
기웃거리며 안채로 들어온 철구,
심통이 나서 마루에 앉아있는 재현과 고모의 모습이 보인다.
철구를 발견한 대식, 계속 인상만 쓸 뿐 어쩌지를 못하고...
고모 빚 갚아 줄 때까즉은 오락실인가 뭔가 하는 소리는 입밖에도
내지마. 그 주둥아리를 인두로 지져버릴테니까!
니가 여태껏 돈을 처먹은 게 한 두 푼이야!
옮긴 일자리만 해도 백개는 넘껏다.
고모 뒤에서 고모의 말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철구.
재현 고모는! 어차피 장의사는 두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
일도 웃잖아! 어차피 문 닫아야 쓴다고.
나는 죽으문 죽었지 장의사는 안한다고.
요즘 장의사를 하겠다는 놈이 어디있어!
철구 안녕하세요. 저... 사람이 죽어서 온 것이 아니고...
장의를 배우러 왔습니다.
(장의를 배우러 왔다는 말에 황당한 듯 쳐다보는 재현과 대식,
깜짝 놀라 얼굴을 내미는 할아버지, 모두 다 놀란다)
고모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는 철구를 보며)
허허!! 누구는 장의사 안하겠다고 저 난린데,
누구는 장의사를 하겠다고 저 난리를 펴분께...
S# 15 장의사 할아버지 방
잔뜩 긴장되어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철구.
할아버지 허허... 일이 힘든디...
철구 3D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왔습니다.
하지만 저도 서울서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죽기로 생각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재현 (문 밖에서 땅을 발끝으로 툭툭 차며) 말은 청산유수네!
할아버지 (근엄하게 얘기하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아주 가볍게)
그런데 여근 사람이 잘 안 죽어. 히히히.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1년 동안 한 건도 못했는디.
10년 동안 한 명도 안 죽은 적도 있었어.
철구 예?
할아버지 요즘은 병원이 생겨서... 일이 웃어.
배울려면 초상치러야 배우는디.
철구 제가 왔으니까 이제부턴 쉴틈 없이 무지하게 죽을 겁니다.
문 밖에서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고모와 재현.
철구 제가 사람 죽는 것하고는 인연이 많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마다 사람이 죽으니까요.
노가다를 나가도 꼭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고,
지하철 공사 나가면, 터널이 무너지거든요.
그것 뿐인 줄 아십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혼자 웃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웃는 이유를 모르는 듯 고개를 숙이고 눈을 치켜뜨는 철구.
S# 16 재현의 방 (밤)
재현의 방으로 우스꽝스럽게 얼굴만 삐쭉 내미는 철구.
이불을 깔고 누우려는 재현.
방안으로 기어 들어와 웃옷을 벗는 철구,
재현 (돌아누워 있다가 팬티까지 다 벗는 철구를 향해) 이거 무해?
철구 나는 옷을 다 벗고 자는데요.
재현, 철구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홱 돌아눕는다.
철구 (자리에 누우며) 돈 얘기하던데 빚은 왜 졌어요?
재현 ........
(돌아누우며) 물건 좀 저쪽으로 향하게 해요!
휙 돌아눕는 재현.
머쓱해서 등지고 눕는 철구, 곧바로 코를 곤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덮는 재현.
S# 17 장의사 마루 (아침)
초라하게 차려진 밥상.
재현이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수저와 젓가락을 놓아두면,
할아버지 이 반찬은 니가 했냐?
재현 ...
할아버지 너 한 번 묵어봐라. 이거 먹겠냐?
대식 (냉큼 집어먹으며) 맛있기만 하구만!
할아버지 (대식에게) 넌 왜 여기서 밥묵냐?
대식 아부지가 시켰는디라.
할아버지 니 애비는 지 새끼를 일 배우라고 보낸 거여, 지네 집
입 줄일려고 보낸 거여? 가뜩이나 밥도 많이 쳐 묵는 놈을..
(대식의 먹는 걸 보며) 느그 아부지가 한심한 놈이다. 자식이 멍청해서 할 일 없으문 공부를 시켜야지. 장의를 배우라고 장의사에 보이면 어찌게! 무슨 장의가 홍어좆인가.
대식 왜 밥 묵는데 아부지 욕은 하고 그라요.
할아버지 으째? 그래도 자슥이라고 아부지 욕하니까 싫냐?
대식 밥 묵는데 아부지 말하니까 밥맛 떨어져 불잖아요.
철구 (대식의 말을 끊으며) 선생님! 장의에서는 전통적으로 예를 중요시 여긴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예라 함은 중국고전, 예기를 출처로 합니까?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으로 철구를 쳐다보는 재현.
할아버지도 눈을 꿈뻑꿈뻑한다. 모르는 얘기다.
할아버지 .......밥 묵자.
철구 장의에서 지나친 사치는 예에 어긋난다고 봐야 옳은데...
저기 수의는 보통 얼마정도 합니까?
할아버지 대중읏어. 30만원부터 300만원까지 다양한께.
철구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관은...?
할아버지 그거도 대중읏어.
철구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장례비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장례라고 보아야
합니까?
재현 꼴리는 대로 하는 거지. 적당한 게 어디 있어요?
철구 적당한 장례비용은...?
재현 밥 먹는데 말 존나 많네.
할아버지 이놈으시끼야. 밥 먹는데서 욕하는 놈이 어디 있어.
재현 밥 먹을 때는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혼잣말처럼) 개좆같은 놈이 와가지고...
철구 (아랑곳 않고) 장의란 게 사람이 죽어야지 비로소 시작되는 거
아닙니까?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공격적 마케팅을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요 ?
대식 공격하긴 누굴 공격혀?
철구 이를테면...
할아버지 장의 일이란 것은, 다 죽은 이 허고 인연이여.
나 하나 잘 살자고 남 죽길 바라겄는가?
때가 되고, 인연이 되면 다 오게 돼 있어.
철구 (끄덕끄덕) 그럼, 시체가 되기 전에 인연을 맺어야 되겠구만요.
황당한 얼굴로 철구를 쳐다보는 할아버지와 재현, 대식.
할아버지 술이나 가져와라.
대식 술이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 내가 다 마셨나?
대식 내가 다 마셨어요.
S# 18 황금슈퍼 앞
황금슈퍼의 기다란 의자에 앉아있는 재현과 슈퍼아들 대식.
철구가 나타나자 시선을 피하는 두사람.
엉덩이를 쓰윽 들이밀며, 능청스럽게 웃으며 옆에 앉는 철구.
긴 의자에 한심하게 앉아 있는 세 사람.
5살 가량의 연이가 나타나 세 사람을 보자마자 까르르 웃는다.
재현 왜 웃어?
연이 참새같응께. 히히히...
(자리에 앉으며) 아저씨 서울에서 뭐했어?
재현 ...그냥. (그저 씁쓸하게 빙긋이 웃는다)
연이 말하기 싫으문 안 해도 돼! 히히히 ...동네 사람 다 아니까.
미장원 시다 했다문서?
대식 느그 엄마 아즉 연락 읏냐? 후후후...
금방 죽을 것만 같은 연이 할머니가 슈퍼 앞으로 걸어오면
연이가 재빨리 세 사람 뒤로 숨는다.
재현 할머니 어디가세요.
연이할매 (비웃듯 웃으며) 나 빨리 죽어부라고 인사하쟈.
재현 아니예요.
연이할매 아니긴 뭐시가 아녀.
느그들땜에 동네가 흉흉해...
어디 누구 안 죽나... 눈깔 시푸렇게 뜨고 앉아서...
망할 놈들!
재현 아니에요 할머니! 오래 사세요.
연이할매 시끼들. 너두 나 죽으문 뺄게 벗겨놓고 내 알몸 볼라고 그라지
(거의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으며) 응큼한 놈들...후후...
연이할매, 연이 손을 낚아채듯 붙잡고 걸어간다.
멍청하게 앉아있는 세 사람.
먼지를 날리며 세 사람 앞을 지나가는 트럭.
S# 19 오락실
오락실의 빠른 화면과 시끄러운 음악.
질서있게 수없이 쌓여있는 동전들.
동전을 바꿔주는 주인의 손. 계속 쌓이는 지폐.
동전을 바꿔주는 주인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재현.
열심히 오락을 하는 대식. 모니터에 얼굴이 닿을 듯이 가까이
댄 채 열중하고 있다. 입으로는 연신 "아자, 아자"라는 기합을
넣는다.
오락실 안으로 들어와 재현과 대식을 찾는 철구.
회오리 차기를 구사하는 중국여자.
그러나 류의 장풍에 나가 떨어진다.
대식 쪽 화면에 INSERT COIN 이라는 글자가 뜬다.
대식 (씩씩거리며 재현에게) 야! 천원만 줘!
재현 (여전히 오락을 하며) 없어!
대식 오백원만!
재현 (화를 내며) 없다니까!
대식 (역시 화를 내며) 왜 화를 내고 지랄이야!
돈을 바꿔주고 있는 주인에게 다가가는 대식.
대식 (주인에게) 천 원만 줘!
대식을 한 번 쳐다보더니 그냥 무시하고 꼬마에게 동전을 바꿔
주는 주인.
씩씩거리는 대식에게 미소를 보이며 천 원을 내미는 철구.
재현의 옆자리에 철퍼덕 앉는 대식이 재현을 한 번 째려보더니
동전을 투입한다.
대식 (가슴이 큰 중국 여자를 파이터로 고르며) 미스 황! 힘 내!
그러나 다시 재현의 파이터 류의 공중 돌려차기에 쓰러지는
대식의 파이터 첸.
철구는 혼자서 열심히 기관총을 쏘아대고 있다.
화면에서 수없이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
S# 20 곰다방 안
싸구려 대중음악이 흘러나오는 다방 안.
대식에게 열심히 얘기하고 있는 철구.
철구 이 일도 잘만 하면 돈 좀 만질 수 있어요.
병원에 찌라시도 붙이고...
교도소 같은 데도 알아봐서 사형집행 날짜가 있는지 확인하고.
영업만 잘하면 이 사업도 굉장하거든...
(자신의 커피를 가져와 앞에 앉는 미스황을 향해)
사람은 다 죽기 마련이거든요.
미스 황 안 죽을 거야! 미스 황도 다 내 돈이라고!
미스황 ????? (눈만 깜빡거리며)
S# 21 곰다방 안 (전화박스)
고모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재현.
재현 고모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더 얘기해봐.
서울 가서 오락실 차린다고.
아니문 장의사 터에다 차리든지.
힘들게 없다고, 오락실은 앉아서 잔돈만 바꿔주면 된다니까.
아이 씨! 이러면 내가 장의사 내놓아버릴 거야!
S# 22 곰다방 안
입에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리면서 말하는 철구.
철구 요즘은 전부 체인점 시대니까...
"낙천 장의사 전국 특급 체인점"이라 붙이고 캐딜락 장의차 몇 대 준비하고 하면...
재현 (철구 옆을 스쳐지나가며) 장의사가 무슨 햄버거 가겐가?
철구 (대식에게) 저는 늘 죽음의 그림자를 끌고 다니거든요.
어쩔 때는 내가 쳐다보기만 해도 죽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니까!
비행기를 쳐다보면 비행기가 떨어진 적도 있어요.
옛날에 오대양사건 있잖아요. 100명이 넘게 지붕천장에서
집단자살한 사건, 그것도 우리 옆집이었다니까요.
낙천장의사 간판을 보는 순간, 번개가 머리를 짜잔 노크하더니.
미스황 (혼잣말로) 말도 안돼!
일어서는 미스 황, 그 뒤로 재현이 다방 문을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
철구 쟤 가슴 하난 정말 끝내 줘. 그렇죠?
너무나 진지하게 듣고 있던 대식,
철구의 말에 갑자기 인상이 구겨진다.
대식의 시선을 피하듯 창 밖을 보는 철구.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체부가 보인다.
갑자기 자동차의 급정거 소리.
자동차에 부딪혀 수없이 굴러 떨어지는 우체부.
순식간에 일어나는 철구와 대식.
S# 23 다방 앞 거리
철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우체부의 몸을 흔들자 갑자기 철구의 손을 움켜잡는 우체부,
화들짝 놀라는 철구,
눈을 번쩍 뜨더니 고맙다는 듯 씩 웃는 우체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려다 다시 쓰러져 버린다.
다시 뛰어가는 철구.
벌떡 일어나 다가오지 말라는 시늉을 하는 우체부, 모자를 벗어 철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니 비틀비틀 자전거를 몰고 간다.
허탈하게 서 있는 철구를 보고 황당하다는 듯 웃는 대식.
S# 24 황금슈퍼 앞
긴 의자에 앉아 하드를 빠는 재현과 투게더를 퍼먹는 대식.
대식 옆에서 침을 삼키고 있는 철구.
선심 쓰듯이 철구에게 투게더를 건네주면...열심히 퍼먹는 철구.
철구 (투게더를 살펴보며) 이게 얼마나 하죠?
대식 삼백원인가? 사백원인가?
철구 이렇게 맛있는 게 삼백원 밖에 안 한단 말야?
매일 사먹어야겠다.
비아냥거리듯 쳐다보는 재현.
재현 앞을 지나치는 자전거.
자전거 뒤에 활짝 핀 철쭉 화분을 싣고 지나가는 여자, 소화다.
재현을 보고 햇살 같은 미소를 짓는 소화, 당황하는 재현.
멍청하게 소화를 쳐다보는 세 사람.
장의사 저편 노래방 개업식에 가는 소화의 뒷모습을 보며,
재현 누구야?
대식 소화잖어. 못 알아보겄지. 흐흐... 그럴 줄 알았다.
재현 (소화를 계속 보며) 소... 화?
대식 작년에 지 서방 죽어 안 내려왔냐. 여기서 꽃집 허는디....
새끼 옛날 생각 나냐? 허천나게 쫓아만 댕기더니...
시집갔다고 허드니 펄썩 이뻐졌어야. 볼때기도 갸름해지고.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는 재현.
대식모가 대식부와 함께 슈퍼 앞에 다가온다.
하드 먹는 것을 본 대식모, 고개를 갸웃하더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금고를 열어보고 나오며,
대식모 쟤들 돈 내고 묵는 거냐?
대식 그람 돈 내고 묵지 돈도 안 내고 묵으요!
대식모 느그들 돈내고 묵냐?
철구, 재현 .........(머뭇거리며)
대식모 이놈의 새끼 가게 좀 지키라고 했더니!
(대식을 줘 패는 대식모) 저리가!
젊은 놈들이... 먼눔의 할 일이 읏다고... 장의사에 붙어가꼬..
대식부 쟤가 어디 가서 뭔 일을 하겄어.
장의사라도 하문 좋지.
대식모 하이고 저 주둥아리.
내 두눈깔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택도 없응께.
느그들은 아즉까지 무하고 있어.
삐죽삐죽 의자에서 일어나 쫓겨가는 세 사람.
S# 25 장의사 가게 안
철가방에서 꺼내지는 짜장면 네그릇.
교묘하게 랩을 벗겨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철구와 대식.
재현과 연이는 아직도 랩을 벗기기에 열심이다.
허리를 만지며 장의사 안으로 들어오는 할아버지.
철구 할아버지 일어나셨네.
할아버지 느그들만 짜장면 시켜묵냐?
재현 (자신의 짜장면을 내밀며) 이거 드세요!
할아버지 (젓가락을 들며) 니가 이런다고 내가 니 빚 갚아줄 줄 아냐?
재현 (연이의 짜장면을 가져가며) 내가 언제 빚 갚아달라고 그랬어요?
열심히 랩을 벗겨놓은 짜장면을 재현이 가져가 버리자 젓가락을 들고 황당한 표정을 짓는 연이.
할아버지와 재현을 번갈아 쳐다보지만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된다.
연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먹고 있는 할아버지와 재현.
철구 일을 배울려면 병원에서 일거리 좀 뺏어와야 겠네요.
대식 일거리는 다 죽는 사람과의 인연이야.
그죠? 할아버지.
열심히 짜장면만 먹고 있는 할아버지.
빈 단무지 그릇에 담긴 짜장면 몇 가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연이.
이때 장의사 문이 슬며시 열리며 기웃거리는 노인, 황지관이다.
황지관을 보자 벌레 씹은 표정으로 변하는 할아버지.
황지관의 표정 또한 일그러진다.
그러나 헛기침을 하며 태연한 척 들어오는 황지관, 뒤에는 배가 불룩 튀어나온 중년의 사내가 문밖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기웃거린다.
황지관을 보자 짜장면을 슬며시 내려놓는 재현, 할아버지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나가며
재현 단무지 좀 많이 달라고 했더니...
황지관 (뒤의 사내를 향해) 들어오쇼. 요거시 장의사텅께 요렇지만,
나가 지관 평생동안 함서 요런 땅 못봤응께.
무덤자리로 하문 최고고, 장사를 혀도 왔다여!
그제서야 상황판단이 되는지....
할아버지 시방 뭐하는 짓이여?
황지관 가게 내놨다문서어! 그 장한 염쟁이 끝낸거여?
할아버지 돌팔이 지관! 병태 이놈의 시끼가 지금.
황지관 판돌이 니 손주한테 물어봐.
나를 평생 돌팔이 지관이라고 놀리더니.
니 시상도 인자 끝났어어!
할아버지 (황지관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밀어내며)
뭐시여 ! 이런 쭉쟁이 염소똥 같은 놈이..... 빨리 안 꺼져!
싸움에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짜장면을 먹고 있는 나머지 세사람
위로 들리는...
할아버지 (소리) 지관도 돌팔이로 하더니, 복덕방도 돌팔이로 허냐!.
어림 웃는 소리 말어! 누가 가게 내놔!
재현이 이 죽일 놈의 시끼는 그냥 콱....
S# 26 재현의 방/마루
<TV 화면>
홍콩영화의 한 장면.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탄과 계속적으로
쓰러지는 사람들.
방바닥에 누워 비디오를 보고 있는 철구와 대식.
문 밖으로 재현이 할아버지가 있나 없나 살피며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온다.
철구 와우! 저걸 다 갖다가 초상을 치러야 하는데...
우리 나라도 빨리 총기 자유화해야 한다니까.
모르긴 몰라도 판사, 변호사 한다는 사람보다 장의사 한다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그치!
대식 처녀나 하나 죽었으면 좋겠다!
철구 (대식에게) 처녀 염할 때 옷을 다 벗겨서 목욕을 시키나?
대식 ...
재현 (옆으로 누우며) 아무리 장의사가 되고 싶다고 사람 죽기를
바라는 경우가 도대체 어디 있어! (혼잣말로) 미친 사람....
철구 그런 뜻이 아니고.
(대식에게) 염하는 순서 알아?
대식 (귀찮다는 듯 재현의 누워있는 모습을 가리키며) 그냥 이렇게 해서
묶어서 묻어버리면 되는 거지 뭐..
<TV화면>
또 다시 수없이 많은 총탄과 쓰러지는 사람들.
재현이 시체를 염한 듯 꽁꽁 묶여서 몸부림친다. 얼굴은 흰 천으로 가려져 있고 몸에 묶여있는 천은 엉망으로 꼬여 도저히 풀 수가 없다. 술에 꼴아 들어오는 할아버지 소리.
묶여있는 재현을 관에 넣고 닫아버리는 두 사람.
할아버지 관이 으째 여그 나와 있냐?
철구 닦아 놓으려고요.
할아버지 쓰잘데 없는 짓들만.... 치워 놔!
재현인 아직도 안 들어왔냐!
들어오기만 해봐라 오살할 놈의 시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테니까.
이때 갑자기 관에서 튀어나오는 재현.
깜짝 놀라 몸을 떠는 할아버지. 재현이 얼굴에 덮인 천을
걷어내고 철구에게 덤벼드는데 발이 묶여서 넘어지기만 한다.
재현이 머리로 철구의 몸을 들이받으면
저 멀리 나가떨어지는 철구.
철구의 몸 위에 가서 밟아대는 재현.
밟아대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밟아대면,
넘어졌던 할아버지가 재현을 때리기 위해서 달려들고,
수의를 채 벗지도 못하고 도망가는 재현.
S# 27 황금슈퍼 앞 (밤)
슈퍼 안에서 소주병을 들고 나오는 철구.
파라솔 아래 앉아있는 재현과 대식 앞에 소주병을 내려놓으며,
철구 미안하게 됐시다. (이빨로 병을 까며) 한잔 받고 화 푸쇼.
재현에게 술잔을 내밀며 술잔을 따르지만, 무시하는 재현.
민망한 듯 권했던 소주잔을 원샷해버리는 철구.
자기 잔에 술을 따라 홀짝거리며 소주를 마시는 대식.
철구 내가요. 이일을 배울려한 것은, 쪼-금 아품이 있어서 그래요.
(갑자기 코를 씰룩거리며, 눈물까지 짜내려는 듯)
마누라랑 애새끼 넷이 한 날 한 시에 죽었습니다.
대식 (깜짝 놀라) 예?! 왜요?
재현도 고개를 돌려 철구를 본다.
철구 (울먹이듯) 세상에 되는 일이 없어서 같이 죽어버리기로 했는데
근데... 근데.........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을 참으려는 듯)
대식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근데요? 무슨 방법으로 죽기로?
철구 (심각하고 단호하게) 약! 쥐약!
근데 저만 못 죽었습니다!
마누라가 덩치가 커서 내 약까지 뺏어 먹었거든요.
가족들 다 가버렸는데 이 못난 놈만 살아 남았습니다.
눈물을 닦는 대식.
철구 나 혼자 살아서 뭐합니까.
저기 궁전장에서 목을 매다가 장의사 간판을 보는 순간.
그래, 저거다 싶더라구요.
토끼같은 자식들, 여우같은 마누라한테 회개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저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재현씨! 나 장의사 꼭 해야 되는 놈입니다.
대식 (재현을 향해) 이 나쁜 놈아! 넌 사람도 아녀.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장의사를 내놔부러!
싫으면 니나 말꺼시지!
재현 (버럭 화를 내며) 내가 뭘 어쨌다고 이래?
(혼잣말처럼) 진짜 되는 일 하나도 없다!
철구 그러지 말고, 우리 세 명이 힘을 합쳐 낙천 장의사를 새롭게 출발시켜 보는 것입니다. 말했다시피 제 주변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재현 (누그러지며) 둘이나 잘해보쇼! 난 관심 없으니까!
대식 (비웃으며) 니가 할 일이 무 있다고!
재현 서울로 가면 될 거 아냐!
대식 너 서울서 빚지고 내려왔다문서.
서울 가봤자 빚쟁이들밖에 더 기다리겄냐?
재현 뭐? 내가 왜 갈 데가 없어?
내 걱정 말고 형이나 잘해!
휙 화면을 빠져나가는 재현.
장의사 안으로 들어가려다 읍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재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S# 28 터미널 앞
공중전화박스 안에서 전화를 하고 있는 재현.
옆에는 서울에서 내려올 때 가지고 왔던 작은 가방이 놓여있다.
재현 야! 야! 시끼야 니가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돈은 갚아준다니까. 일단 며칠만 신세 진다니까!
알았어 임마. 나쁜 놈!
전화박스 앞으로 화사하게 꽃이 핀 화분을 들고 우체국으로
들어가는 소화. 너무 화사해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재현 알았어. 알았다니까! 샤꺄.
전화를 끊는 재현.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건다.
재현 호철이. 없어요? ... 없으면 말지, 왜 반말이야. 씨...
전화하며 고개를 돌리다 우체국에서 화분(방금 전의 화분과
같지만 꽃은 다 떨어지고 완전히 시들어 있다)을 들고 나오는
소화를 발견하는 재현.
멍하니 소화를 보며 수화기를 내려놓는 재현.
갑자기 '촤르르' 동전 쏟아지는 소리.
깜짝 놀라는 재현. 내려다보면 전화기에서 10원짜리 동전이 잔뜩 쏟아져 나와 있다.
주위를 살피면서 너무나 기뻐하는 재현의 표정,
손바닥 가득 십원짜리 동전을 집고 유리창 밖을 보면,
사라지고 없는 소화.
<사이>
터미널 밖 의자에 처량하게 앉아있는 재현. 힘없이 앉아 동전을 세고 있다.
일어서 동전을 주머니에 쑤셔넣는데 우수수 다시 떨어지는 동전.
동전을 급하게 주워담기 위해 고개를 숙이다 의자에 머리를
부딪치는 재현.
주변사람들이 전부 재현을 쳐다보고, 아이들은 동전을 주워
달아나고...
S# 29 화원 앞
길 건너 화원 앞에 서있는 재현, 한참동안 화원을 들여다본다.
화원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따사로운 햇살 뿐.
화사한 꽃들 사이로 근조라고 쓰여있는 화환이 보인다.
넋이 나간 듯 화원을 바라보고 있는 재현의 뒤에서 나타난 소화.
재현이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듯 자신도 화원 쪽을
바라본다. 따사로운 햇살만 감미롭다.
천천히 화원 앞을 떠나려는데,
재현의 볼에 손가락을 가까이 대고 어깨를 툭 치는 소화.
재현이 고개를 돌리자 소화의 손가락에 찔려 깜짝 놀라는 재현.
소화 (웃으며) 오래간만이야.
재현 으응. 화원 한다며...
소화 잘 안돼... 여기는 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거든.
장례식 때나 가끔...팔리고... 너네 할아버진 가끔 보는 편이야!
들어와. 차 한잔 하고 가.
재현 아니야... 갈 데가 있거든..다음에...
어색하게 손을 들어보이는 재현. 돌아서서 바쁜 듯 걸어간다.
그런 재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소화, 미소를 지으며 화원 안으로 들어간다.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던 재현... 소화가 보이지 않자 찔렸던 볼을 만지며 혼자 웃는다.
S# 30 장의사 앞
관 두 개를 가운데 두고 족구를 하고 있는 철구와 대식.
관의 모서리엔 연이가 앉아있다.
공을 쫓아 돌아가는 연이의 눈동자.
지나가려던 차가 빵빵거린다. 달려가 관을 치워주는 철구와 대식,
운전사 (창 밖을 내다보며) 니기미 호로 자식들 길거리에서!
차가 지나가자 다시 관을 재빨리 원위치 시키고 족구를 계속하는 두 사람.
연이의 눈동자는 끊임없이 공을 따라다니고....
읍내 쪽에서 기웃기웃 멋적어하며 걸어오는 재현.
재현을 보고 웃는 철구와 대식.
재현의 방향으로 공이 오자 창피함을 모면하려는 듯 사정없이
공을 차버리는 재현.
공이 벽을 맞고 정신없이 튕겨서 돌아다니자 마구 눈동자를
돌리는 연이.
결국 공이 연이의 머리를 때리고 연이가 뒤로 발랑 넘어진다.
S# 31 장의사 안채 (밤)
물건이 넘어지는 듯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며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넋을 잃고 마루에 혼자 앉아있는 재현을 발견한 만취한 할아버지.
할아버지 안 자냐? 썩을 놈, 서울로 내뺀 줄 알았더니.
재현 ...
할아버지 느그 아부지도 처음에는 이 일 안할려고 난리를 치더니
얼마 안 있어서 내가 이 일을 시킨 것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별 것 아니거든... 흐흐흐... 술 한 잔 할랴.
재현 들어가 주무세요.
할아버지 요놈의 시끼... 키키키키...
재현에게 장난을 걸려다 그만두고 재현의 옆에 말없이 앉아있는 할아버지. 한참의 시간이 흐른다.
할아버지 이 일 만큼 할수록 좋은 일이 없다.
재현 주무세요...
할아버지 이놈의 시끼가... 키키키키...
수없이 많은 시신을 치워왔지만
내 시신은 누가 치워주나 걱정을 했는데.
우리 손주놈이 해주면 더 좋고... 이놈의 시끼... 키키키...
내가 살 날도 이제 얼마 안남었은께.
내일 돈 줄 테니까 빚 갚아라...
이 일 정 하기 싫으문 안해도 좋고.
비틀거리며 방으로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재현의 시선이 따뜻하다.
S# 32 장의사 창고 안
장의사 안이 갑자기 활기를 찾듯 화사한 빛이 만들다 만 상여와 관을 비추고 있다.
장의용품을 늘어놓은 채 가르치고 있는 할아버지.
메모하며 열심히 듣고 있는 철구.
할아버지 이건 수의! (재미없다는 듯 나가려는 재현을 보고)
재현이 어디 가냐?
재현 (재미없다는 듯) 그냥 수의잖아요.
할아버지 아니야, 이건 비싼 수의! 이건 값싼 수의!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 대식. 할아버지가 뒤통수를 친다.
<사이>
할아버지 상여는 삼십 여 가지가 넘응께.
구분은 그냥 돈 많은 놈 상여, 돈 쪼금 있는 상여,
돈 없는 놈 상여로 구분해!
돈 많은 놈은 꽃 많이 붙여주고, 돈 없는 놈은 꽃을 쪼금만
붙여주면 된께. 꽃값이야 하나에 오원도 안하닝께.
일단 뼈대를 세우고... 못을 여기 박고,
요렇게 세우면 (쓰러지는 상여) 쓰러진다.
재현 이쪽에 못질 안했잖아요.
할아버지 알어 임마! 이짝에도 못질을 해야 쓴다고 말할 참이야. 시끼!
(웃으며) 재미 웃다. 술 남은 것 웃제? 나 나갔다 오께.
철구 선생님, 마저 가르쳐주셔야.
할아버지 일은 따라댕겨 배우는 거지, 말로 어찌케 해!
옛날에 책 몇 줄 읽고 남의 아부지 염하러 간 놈이 있었는디.
그 놈 어찌케 된 줄 아냐?
순서 까먹어갖고. 얼마나 상주한테 얻어 터져부렀는지
입이 요롱게 (흉내내며) 돌아가부렀어.
재현이는 봤지야! 정희네 당숙!
돌아간 입모양을 하며 흥얼거리며 나가버리는 할아버지.
S# 33 병원 앞
담벼락에 붙여지는 찌라시.
"천국으로만 모십니다 :
<최고의 관, 최상의 수의, 아름다운 꽃상여> 24시간 출동대기.
전화 44-4444 - 낙천 장의사"
대식과 철구가 병원 담벼락에 찌라시를 붙이고 있다.
병원 문 앞.
그저 평범하고 아주 작고 나약하게 생긴 사람이 슬리퍼를 신고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대식 야! 저기 봐! 저 사람!
저 사람이 병원에서 시체 꿰매는 사람이야.
이때 병원 문을 열고 나오는 소화.
약봉지를 들고 시체 꿰매는 사람과 같은 의자에 앉는 소화.
대식 한 달에 600만원을 번대. 졸라 멋있다.
철구 정말로? 600만원?
대식 굉장한 사람이야! 그렇지!
사내가 다시 시체를 꿰매러 들어가듯 담배를 멋있게 끄고 (입안으로 담배를 넣어 혀에 담배를 끄고) 느린 걸음으로 병원 문을 밀치고 들어간다.
사내를 따라 병원문 앞에 가서 안을 살펴보는 철구.
여전히 시체 꿰매는 사람에게 감탄한 듯 앉아있는 대식.
철구 (대식에게 다가오며) 저기 학교에서 운동회 한댄다.
동네 사람들 다 모여있을텐데 거기에서나 뿌리자.
선행하는 동요소리.
S# 34-1 학교 (운동장가)
아이들의 매스게임이 동요에 맞춰 펼쳐지고 있다.
운동장 주변을 돌며 찌라시를 돌리고 있는 철구.
아주 불쾌한 듯 받자마자 버리는 사람들.
매스게임을 구경하는 재현.
이때, 재현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갈기는 손.
재현 뭐야 씨....
얼굴을 구기고, 재현이 돌아보면..
험상궂은 덩치가 실실 쪼개며 서 있다.
성구 이 씨방세 ~ 너 재현이 맞지? (또 때리려고 하며)
재현 (긴장하며) 서, 성구..... 마성구 ?
성구 그랴, 이 개새꺄, 오랜만이다 !
재현의 염색한 머리를 마구 흐트러뜨리며..
성구 옛날이나 지금이나 띨빵한 건 똑같구만이 ~
좆나게 반갑다, 새끼야. 서울에서 지랄하다 미장원 시다한대매...
근데 씨벌 왜 여기 있어.
(대식을 보고) 어, 대식 성! 간만이여!
대식의 옆구리를 탁탁 치는 성구.
어설프게 웃으며, 고개를 까닥하는 대식.
성구 아따, 씨벌. 동네 성인디.. 나한테 인사를 허면 쓰간 ~ 안 그려!
대식 그, 그려~
여전히 어설프게 웃는 대식.
성구 뒤쪽으로 애를 안은 여자와 비슷한 덩치 똘마니들이 여럿이 서 있다.
재현 여, 여긴 웬일이야?
성구 우리 애기가 여그 안 다니냐.
재현 결혼했어?
성구 (작은 소리로) 물렸다. 농고 댕길 때 연습 삼아 한 코 질렀는디,
이 작것이 그냥 애새끼를 싸질러 부렀잖냐.
(아내에게) 알지? 재현이...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여자, 고개를 꾸벅해서 인사를 한다.
성구 인사들 혀라. 우리 애기들이여.
구십도로 꺾어서 절을 하는 덩치들.
덩달아 구십도로 인사를 하는 대식과 재현.
성구 나하고 같이 일하는 애기들이다. 착해! 법 없이도 살 애기들이여.
재현 차, 착해 보이네~
철구, 옆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가.. 끼어든다.
철구 (손을 내밀며) 나도 인사 좀 합시다.
판철구라고 합니다. 낙천 장의사에 같이 있습니다.
철구를 위아래로 째리며, 악수도 받지 않는 채.
성구 느그 집 아직도 장의사 허냐 ?
재현 하, 할아버지가 하잖아...
철구 누구 돌아가시면.. 꼭 좀 부탁 드립니다.
철구가 찌라시를 건네면, 성구가 받아든다.
철구 재현이허고는 형동생하며 지내는 사입니다.
성구 아, 그렇습니까요? 요새 우리가 전쟁이 쪼까 많거든요.
(재현에게) 그래서 애기들 많이 다친다. 죽는 놈들도 있고.
(작은 목소리) 몰래 처리헐 것도 상당하거든.
철구 꼭 좀.. ("천국으로 모십니다" 전단을 건네며) 여기 연락처...
성구 아...예. 어차피 죽는 사람은 죽는 사람이고. (웃으며)
같이 묵고 살아야죠. 묵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연락할게요. 조용히.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덩치1 헝님, 저쪽 오거리파 시끼들이 왔는디요.
성구 작것들이 여근 웬 일이여?
덩치1 고쪽 애기들도 이 학교 다니는갑소.
성구 애기들 운동회 와서 쌈 걸지는 않컷지.
갑자기 운동장 주위가 긴장이 되고,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어마어마한 덩치들이 운동장 가로 모여들지만 아이들의 천진스런 동요는 경쾌하게 들린다.
성구와 똑같은 덩치아들이 '아빠'를 부르며 달려온다.
S# 34-2 학교 운동장
<단상>
선생님 다음은 동네 대항 이어달리기.
(소리) 김선생! 저쪽의 얘기들 정리 해주고요...
뒤에 뭐 사먹고 있는 애들! 빨리 각반에 정렬하고! 빨리! 빨리!
너희들 맞아 죽을래!
S# 34-3 학교 (운동장가)
덩치1 (저쪽 편에서 오더니 웃으며) 헝님 저쪽 아들이 한판 붙자는디요?
성구 뭐시여? 학교 운동회 와서.
덩치 1 동네대항 이어달리기가 하나 남은 것 같은디, 그걸로 하자는디요.
성구 미친 새끼들 아냐?
덩치2 이어달리기는 우리 쪽수가 모자라잖아요.
덩치1 쟤들한테 부탁 좀 해볼까요? (재현일행을 보며)
덩치2 전속 장의사로 한 10년 해준다고 해불죠!
성구 15년으로 해준다고하지 뭐. (재현을 향해 소리친다) 야! 재현아!
S#34-4 학교 운동장
우렁찬 응원과 함께 이어달리기를 하기 위해 서있는 네 팀의
사람들. 두 팀은 윗통까지 벗고 온갖 문신을 자랑하는 덩치와
그 덩치들 틈에 끼여있는 재현과 대식.
다른 팀은 아저씨와 노인들이 섞여있다.
맨 먼저 달리는 대식이 덩치들의 문신과 눈빛에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출발하자마자 넘어지며 덩치의 다리를 걷어버리고,
완전히 나뒹구는 덩치, 화를 내면서 일어나다가 자신의 대빵을
본다. 도끼눈을 뜨는 대빵.
죽일 듯이 주먹을 휘두르며 쫓아오는 덩치.
무서워 악을 쓰며 도망가던 대식이 아저씨 할아버지까지
따돌리며 선두를 선다.
두 번째 양쪽 덩치들이 달리는데 너무 뚱뚱한 나머지 제대로
달리지를 못한다.
동요소리가 높아만 가고, 아이들의 환호성소리. 할머니 할아버지
들의 웃는 모습 위에....
달리기에 져 흥분해있는 오거리파 덩치에게 다가가는 철구
덩치 뭐허는 깔따구 새끼여 ?
철구, 대답도 없이 덩치에게 찌라시를 건넨다.
철구 저쪽 깡패들이 여기도 전해주라고 하던데요.
필요할 것이라고...
보스 (광분해서) 뭐시여 ! 뭐시여 애기들 학조와서 치네!
보스가 김밥을 먹고있는 마성구를 쳐다보는 사이,
똘마니들은, 탁자 다리를 부수어서, 몽둥이를 만들고.....
어떤 놈은 단상에 처진 천막 지지대를 뽑아 든다.
와르르 무너지는 천막.
살기 등등해지는 똘마니들을 피해 도망치는 아이들.
그늘에 앉아서 김밥을 먹던 성구파와 재현, 대식.
볼메지게 입에 틀어넣던, 덩치1이 벌떡 일어난다.
성구 저 시부럴 눔덜이 아그들 다니는 학조에서.. 쳐 !
급한 김에 콜라페트병을 거꾸로 들고 나가는 놈.
나무젓가락을 들고 퉁겨져 나가는 놈.
한바탕 난리다.
재현과 대식..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 한다.
와아아 ~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 한 복판에서 맞붙는 놈들.
아이들, 놀라서 도망치고.. 몇몇은 호기심에 숨어서 지켜본다.
운동장에선 서로 엉키고, 넘어지고, 흙먼지가 일고..
엉망진창으로 어울려 논두렁 싸움을 하고 있는 놈들.
운동장 중앙에 세워진 오재미 바가지.
천막 지지대를 휘두르는 놈의 손길에 바가지가 터진다.
반짝이 종이 꽃가루가 꽃잎 마냥 바람에 흩날리고..
스륵 흘러내리는 플래카드.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
S# 35 장의사 마루 (밤)
여전히 운동회의 함성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대청마루.
재현, 철구는 멍청하게 앉아있다.
<사이>
재현이 대청마루에 널브러져 자고 있다.
이 때, 띠리리링 울리는 전화.
잠이 덜 깬 재현, 수화기를 든다.
재현 여보세요.
(소리) 거기 장의사죠 ?
재현 (낮게) 아, 아닌데요. 가정집인데요.
(소리) 에헴...
재현 장의사 맞는데요.
(소리) 분명히 장의사 맞죠 ?
재현 어디신데요.
(소리) 여기? ... 공동묘지다, 임마! 낄낄낄..
재현, 눈을 깜박깜박 하더니..
재현 어떤 개자식이 꼭두새벽부터 장난전화질이야!
너 시방 어디야, 새꺄!
(소리) 공동묘지라니까!
재현 하 ~ 이런 좆만한 깔따구 쉐끼가 ~ 야! 너 누구야?
뚝 끊기는 전화.
재현 여보세요 ! 여보세요 !
그 순간 다시 울리는 전화벨.
재현, 전화를 받으면..
재현 여보세요.
(소리) (격한 호흡소리와 신음 같은 소리가 들린다)
재현 너, 아까 전화한 놈이지? 그치?
(소리) 거기.. 장의사죠?
재현 그래, 임마. 거긴 공동묘지고, 맞냐 ?
(소리) 예. 여긴.. 공동묘지...옆 성성린디요. 옆집 아줌씨가 죽었어라 ~
재현 죽었어요?
어느새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냐?
재현 성성리 명자네 엄마요.
철구 (눈을 감고 걸어나오며) 초상이요?
할아버지 빨리 준비해! 다른 장의사에서 도착하기 전에. 빨리!
눈을 뜨지 못하고 방에서 나오는 철구.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한다.
S# 36 장의사 창고 안 (새벽)
할아버지 (재현에게 조등을 건네며) 재현이는 먼저 가서 조등을 걸어라.
다른 장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조등을 먼저 거는 장의사가 일을
맡게 된다.
(철구에게) 너는 앞집 가서 대식이 불러! 빨리 물건들 준비하고.
S# 37 들판 (새벽)
안개가 뽀얗게 내려있는 넓은 들판. 빠른 음악과 함께 안개를
가르며 조등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는 재현.
S# 38 장의사 가게 안
할아버지와 철구, 대식이 수의, 명정, 칠성판들을 바쁘게 챙기고,
S# 39 들판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려가는 재현.
S# 40 다른 들판
다른 쪽 길 저 멀리, 안개 속에 두 명이 탄 자전거 한대가 빠르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등을 들고 빠르게 달려가는 부부장의사.
S# 41 들판
무심코 바라보는 재현의 시선에 저 멀리 가는 부부 장의사의
조등이 보인다.
깜짝 놀라는 재현. 벌써 부부의 자전거는 재현의 큰길로 접어들어
재현 앞에 달리기 시작한다.
죽어라고 달리기 시작하는 재현.
재현을 발견한 부부 또한 미친 듯 자전거 페달을 밟아대는데,
그러나 힘이 좋은 재현이 서서히 부부를 따라잡기 시작하고,
다급하게 뒤를 쳐다보며 달려가는 부부 자전거.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뚱뚱한 마누라 때문에 자전거 속도가 나지를 않는다.
남편 (다급하게) 내려!
부인 무시라?
남편 니 뚱뚱해서 못 달리잖아! 내리랑께!
부인 무시라?! 이렇게 달리는데 어쩌게 내려!
남편 (점차 재현이 가까워지자) 뛰어내려!
부인 무시.. 뛰어내리라고라! (뛰어내리려고 몇 번을 시도하는 부인)
오매? 나 죽겄네!
남편 빨리 뛰어 내리랑께! (동시에 남편이 부인을 밀쳐버린다)
논바닥에 나뒹구는 부인,
몇 바퀴를 구르더니 논두렁에 처박힌다.
이제야 씽씽 달리는 남편의 자전거.
재현과의 자전거 경주가 치열하다.
부인 (논바닥에 굴러 떨어져 조등을 치켜올리며)
비영신, 등을 가지고 가야지!
부인 너머 멀어져 가는 두 대의 자전거 .
S# 42 초상집 마당
초상집 문 앞에 걸려있는 <낙천 장의사>라고 쓰인 조등.
헥헥대며 숨을 고르는 재현. 초상집 안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초상집은 으시시한 느낌이다.
어수선하게 서서 수근거리는 마을 사람들.
재현 (고개를 갸웃하더니) 저...낙천 장의사에서 왔는디.
저...얼토당토않게 사람이 돌아가셨다문서...요.
동네사람1 죽은지 열흘은 넘은 것 같은디.
파리가 하도 꼬여서 명자 아줌마가 방문을 열어봤다는디...
동네사람2 과부가 되어 혼자 산 지가 10년은 넘었어라.
문을 열자 갑자기 날아오는 파리떼. 재현이 급하게 몸을 피하자
경찰 자..자... 저리 좀 비켜요. 사진 찍어 보고해야 하니까.
동네사람1 (재현에게) 들어가서 저 칼부터 빼부씨요.
혼자 사는 것을 못견뎌하더니....
외로움이 큰 병이어라. 자기 손으로 칵 죽어불게.
동네사람 뒤에서 슬며시 얼굴을 가리고 물러서는 재현.
경찰이 방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카메라 시야로 불안하게 가까워지는 안방문.
열린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카메라.
화면으로 대식의 등이 휙 떠밀려 들어온다.
S# 43 초상집 방안
대식을 따라 음침한 방안으로 들어가는 카메라.
더듬거리다 방안에 불이 켜지면.....
벽에 기대어 죽어 있는 여자.
칼이 가슴에 박힌 채, 혀까지 빼물었다.
분노하듯 카메라를 노려보는 여자.
으허헉~ 놀라면서 움찔 물러서는 대식.
재현은 고개를 돌린 채 서있고.
재현 왜, 왜 그래?
대식 보지 말어.. 기절헐 것잉께..
꿈쩍도 않고 서있는 철구.
대식 괜찮소? 담이 겁나게 크구만이. 형씨.
대식이 철구를 툭 건드리면,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는 철구.
쿵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재현,
일자로 벌렁 넘어진다.
앞뒤를 번갈아 보더니..
대식 시벌, 왜 난 기절도 못허지 ?
<사이>
앞뒤로 나자빠져 있는 철구와 재현.
할아버지 뭐해! 세숫대야에 물 떠 와!
대식 (피를 보며) 한 바께쓰는 되겠는디요.
징허고만이...저승가는 길에 칼까정 가져갈라 그라요.
할아버지 걸레랑 찾아 가지고 와!
걸레로 시체 주위를 닦자,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붉은 피.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칼을 빼서 씻자,
시체의 얼굴표정이 슬며시 변하며 미소까지 떠오른다.
곱게 이불 위에 눕혀지는 시체, 그러나 뒤틀려 도무지 제대로
펴지지가 않는다.
할아버지 (다리를 주무르며) 몸에 기온이 빠져나가불기 전에 펴야 하는디...
너무 오래됐구만... 정성껏 주물러 펴보라고... (방에서 나간다)
ㄴ자로 굽어져 있는 시체.
여자를 반듯하게 눕히려 애쓰는 대식,
여자의 다리 쪽으로 얼굴을 대고.. 다리를 누른다.
상체가 덤빌 듯 벌떡 일어선다.
다리를 묶고서 돌아보는 대식.
대식을 노려보듯 다시 표정이 변한 시체.
대식 시벌, 간떨어질 뻔 했잖여.
상체를 손으로 누르고, 시체의 다리를 발바닥으로 꽈악 누른다.
두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지는 다리.
S# 44 초상집 마당 (밤)
시끄러운 초상집 마당. 씻김굿 음악.
소주 댓병을 하나씩 들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마을 사람들의 행렬.
시체 있는 방을 외면하고 마당의 평상에 앉아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재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대식이 물건을 챙겨들고 재현 앞으로 지나가며.
대식 들어와 봐. 이젠 하나도 안 무서워.
대꾸도 하지 않는 재현.
재현 앞으로 커다란 화환이 혼자 걸어온다.
재현의 눈 앞에 멈춰진 화환 뒤에서 얼굴을 내미는 소화.
당황한 재현이 화환을 쓰러뜨린다.
다시 일으켜 세우는 소화, 가볍게 웃는다.
재현 아..아.. 죄송합니...
소화 결국 할아버지 일 돕기로 했다며...
재현 응? 누가?
소화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정말 좋아하시더라구.
잘됐다. 이제 자주 볼 수 있겠네.
재현 그... 그래. (발 밑만 쳐다보며)
활짝 웃는 소화. 창피한 듯 얼굴이 빨개지는 재현.
이때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씻김굿 음악.
굿장단 사이로 소화를 의식하며 불편하게 서있는 재현,
그 옆의 소화도 무표정하게 굿을 바라보고 있다.
무당의 시선과 눈이 마주친 재현.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아름답게 흔들리는 지전 사이로 재현과 소화의 얼굴이 보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말갛게 씻긴 듯...다정해 보인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술 취한 동네 사람들이 술병을 들고 후렴을 따라하며 춤을 춘다.
관을 들고 굿을 쳐다보느라 사람들을 밀치며 걸어가는 대식.
철구는 여러 가지 물건들을 들고 가다가 관 묶을 천을 바닥에
흘리며 계속 가는데, 마당에 끌린 천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계속 밟아 대고, 밟을 때마다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철구.
철구가 흘린 천을 주워 삼고 따라가는 연이할매.
S# 45 초상집 방안/마당 (밤)
철구가 일시에 천을 잡아 당기자, 제사상을 지나 마당으로 향한
천으로 인해 제사상의 물건들이 온통 쓰러지고, 마당에서는 천을 주워담고 있던 연이할매가 사람들을 밀치며 질질 끌려온다.
철구가 반동으로 관 위에 쓰러지자 철구의 뒤통수를 치는
할아버지.
굿 음악소리 점차 커지면,
S# 46 초상집 마당 (밤)
상주인 듯한 남자와 함께 서 있는 철구.
상주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품에서 돈을 꺼내준다.
철구 (받아 넣으며) 초상집에서는 다들 '노잣돈'이라고 해서...
상주가 가자 흐뭇한 얼굴로 돈을 세어보는 철구.
갑자기 철구의 돈을 가로채 가는 대식.
대식 배웠다는 사람이 이러면 못쓰지!
철구 야 임마! ...반씩 나눠!
대식 (돈을 집어넣으며) 초상은 치러불고 야기하자고.
이때 누군가와 얘기하던 상주가 다가온다.
상주 (두 사람에게) 혹시 염할 때 금니 못 봤는가?
금니 두 개가 없어졌다는디...
대식 (철구를 보며) 금니?
철구 나는 모르는 일이야. 정말이라니까...
두 사람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상주.
<사이>
상여 뒤에서 담배를 피는 철구와 재현.
돈 때문에 싸우는 대식과 철구.
둘 사이를 몸으로 막으며 말리는 재현.
상여에 떨어지는 재현의 담배에 의해 삽시간에 활활 타버리는
상여.
관을 들고 나오던 할아버지와 동네 사람들, 다 타버린 상여를
발견하고 주저앉으며 돌아버린다. 암전.
S# 47 초상집 마당 (새벽)
먼동이 터 오는 아침.
초상집 풍경이 천천히 보여지면 마당 가득 상여꽃이 보여진다.
마당에 앉아 상여꽃을 접고 있는 온 마을 사람들.
S# 48 목욕탕
김으로 뽀얀 목욕탕 안. 소주 댓병을 한 병씩 들고 탕 안으로
들어오는 일행.
할아버지 병균을 쫓는데는 쏘주가 최고다.
소주를 대야에 따라 세수를 하는 할아버지.
세 사람도 할아버지를 따라한다. 나머지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일을 할라문 첫 번째가 빨리 잊어부러야 한다.
안 그러면 시체가 눈앞에 있어 못살어.
거기에도 쏘주가 최고야. 캬우...
세사람 (똑같이 쏘주를 마시며) 캬우!!!
쏟아지는 물에 샤워를 하는 세 사람.
대식이 할아버지의 물건을 보려고 기웃거리자, 자꾸 피하는
할아버지.
대식 왜 자꾸 피하요?
아따 뭐 볼 것이라도 있는 갑소? 흐흐흐...
대야로 머리통을 얻어맞는 대식.
구석에서 혼자 몸을 씻는 할아버지의 초라한 모습 뒤로
넋이 나간 채 탕 안에 앉아 있는 세 사람.
대식 (아랫도리를 보며) 어차피 쪼그라들 것... 존나게 써야 하는데...
재현 안 무서워?
대식 무섭긴 뭐가 무섭다고?
재현 죽은 사람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려.
대식 나는 학조 댕길 때부터 잊어부로는 것에는 도사였어.
철구 (웃으며) 그래서 맨날 꼴찌 했잖아.
대식 당신이 봤어?
철구 안 봐도 안다.
재현이 두려움 속에 탕 안을 내려다보자, 효과음과 함께 무서운 얼굴로 노려보는 죽은 아줌마.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오는 재현.
뛰쳐나오는 철구와 대식도 엉겁결에 뛰쳐나온다.
철구 왜 그래?
대식 무야!
서로를 쳐다보면서 자신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세 사람. 선행되는 노래방의 음악소리.
S# 49 노래방
죽어라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세 사람과 미스 황. 억지로 흥겨워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
탬버린을 들고 지랄발광을 하며 혼자 즐거워 쇼를 하는 미스 황.
S# 50 노래방 앞 거리
아직도 노래를 부르며 좁은 계단에서 내려오는 네 사람.
재현과 철구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고, 대식은 미스 황에게 뽀뽀를 하려고 한다. 꺄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피하는 미스 황.
거리로 나오다 놀라며 멈춰서는 네 사람.
거리에 듬성듬성 가만히 서있는 푸르른 사람들.
술에 취해 전혀 의식하지 않고 걸어가는 네 사람.
네 사람 뒤에는 죽은 과부가 무표정하게 뒤따라오고...
S# 51 재현의 방 (밤)
세 사람이 잠든 방안. 밖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
슬금슬금 기어 뒤 창문을 열어보는 재현.
세차게 들리는 바람소리뿐.
어둠 속에서 바람소리를 한참동안 듣고 있는 재현.
다시 방 안에 누워 뒤척이다 옆을 보면, 나란히 누워있는 죽은
과부.
재현이 머리맡에 있는 병을 들고 과부의 머리를 수없이 내리친다.
그러나 병도 깨지지 않고 과부의 표정도 전혀 변하지 않는다.
이윽고 한참만에 가볍게 웃기 시작하는 과부.
과부의 머리에서 곱게 피가 한줄기 흘러내린다.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닦는 과부, 손에 피가 묻은 것을 확인하고, 갑자기 재현의 뺨을 때리는 과부.
재현이 다시 한 번 병으로 이마를 내리치자,
재현의 손에서 병을 낚아채 가볍게 재현의 머리를 내리치는 과부, 한방에 쓰러지는 재현.
짧은 암전.
S# 52 장의사 마루
넋이 나간 듯 앉아있는 재현이 옆으로 픽! 쓰러져 버린다.
재현을 일으켜 세우는 철구.
머리에 피를 흘리며 방안에서 기어 나오는 대식.
대식 내가 으째 여그서 잤부렀지,
아부지가 밥은 여그서 먹어도 잠은 집에서 자라고 했는디.
머리가 아프네. (머리를 만지며) 어, 이거 피잖아.
철구 너는 또 왜 그래?
대식 꿈에 어떤 년이 병으로 머리를 치드만... 씨발년!
그란디 얘는 으째 꺼꾸러져 자냐?
철구 너무 무서워서 그런가 봐!
대식 무서운 덴 개고기가 직방인디..
S# 53 들판
경쾌하고 빠른 음악과 함께 끙끙거리며 줄에 매달려 끌려가는
강아지. 줄을 따라가면 자전거에 매달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전거 속도에 계속적으로 스텝이 엉키며 괴로워하는 강아지.
넓은 들판을 달리는 세 대의 자전거.
대식은 미스 황을 태우고, 재현 뒤에는 철구가 뒤따라온다,
<사이>
자전거의 짐 싣는 곳에 줄로 칭칭 묶인 채로 강아지가 애처롭게 끌려가고 있다.
S# 54 공동묘지 (낮)
공동묘지를 쳐다보며 빠르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일행.
S# 55 바닷가
가파른 바닷가로 향하는 자전거.
대식의 자전거가 고장나 수십 미터를 미끄러져 미스 황과 함께
바다에 풍덩 빠져 버린다.
<사이>
가마솥에서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웃통을 걷어붙인 대식.
땀을 뻘뻘 흘리며, 불을 지핀다.
<사이>
고기를 먹고 있는 일행.
카메라 천천히 움직이면 강아지도 닭고기 뼈를 먹고 있다.
미스황 오빠! 진짜 밤에 공동묘지 갈 꺼야?
재현 솔직히 난 좀 무서운데..
미스황 남자가 좆도 없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무서움 안타서 걱정이었어.
대식 걱정할 것도 많다. 무서움은 무서움으로 이기는 거야.
백사장 한쪽에선 대식이 미스 황 옆에 다정하게 앉아 끊임없이
미스황을 탐하려고 하고, 피하는 미스 황.
미스 황을 대식과 철구가 모래에 묻고 있다.
미스 황을 바다에 빠뜨리기 위해서 들고가는 대식과 철구.
철구는 미스 황의 몸을 더듬고, 대식은 철구의 손을
의식하는데... 백치처럼 웃기만 하는 미스 황.
화가 난 대식, 미스 황을 내려놓고 철구를 째려본다.
허허 웃는 철구.
대식이 힘겹게 혼자 미스 황을 끌고 바다로 향하고, 뒤에 서서
아쉽다는 듯 미스 황을 바라보는 철구.
사진을 찍기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씩 모래를 파고 다리를 묻어
모두의 키를 똑같이 맞춘다.
모두의 키가 똑같이 맞춰지면 태양이 번쩍.
S# 56 동 바닷가 (저녁)
촌스럽지만 일몰이 아름다운 바닷가.
천천히 자전거를 끌고 바다를 떠나는 네 사람. 어딘지 모르게
비장해 보인다. 자전거 뒤로 이들이 만들어놓은 커다란 네 개의 모래 묘가 석양에 보인다.
S# 57 공동묘지 (밤)
쥐죽은 듯이 고요한 공동묘지,
어디선가 으스스한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다.
공동묘지를 향하여 자전거를 끌며 천천히 걸어가는 네 사람.
공동묘지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시작하는
대식. 덩달아 자전거를 급히 타고 지나가는 나머지 사람들.
갑자기 아악... 소리를 지르는 미스 황.
저 멀리 희끗희끗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마구 내달리는 자전거.
재현과 철구의 자전거가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나가떨어지고,
언덕 밑으로 끊임없이 굴러가는 철구.
대식과 미스 황은 미친 듯 내리달리는데.
대식 눈감어!
악... 을 쓰는 미스 황의 비명과 표정. (암전)
<사이>
덜컹거리며 가는 리어카.
아무렇게나 포개져 리어카에 실려가는 재현과 대식, 미스 황.
S# 58 부부장의사 (밤)
시멘트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세 사람.
<부부장의사>라는 깨끗한 썬팅이 보인다.
시체를 등지고 전화를 하고 있는 남편.
앞쪽에선 아내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남편 예, 세 사람요. 여자 하나, 남자 둘.
어짜게 보문 삼각관계에 의한 동반자살 같기도 하고요.
예..입에 거품 물고 죽은 것 보문..
광신도의 집단 자살 같기도 하는디라.
이때, 스르르 일어나는 대식.
아내, 남편의 어깨 너머로 대식의 모습을 본다.
역광을 받아 기괴한 대식의 모습.
숨이 뚝 멎는 아내.
연이어, 재현이 일어나면.. 눈이 뒤집히더니..
남편에게로 스르르 무너진다.
남편, 수화기를 손으로 막으며..
남편 아따이 이 사람아, 지금 전화중이잖여.
(수화기에 대고) 예. 빨리 좀 와주씨요. 수고하씨요.
(끊고, 아내를 보며) 아따 이 사람이.. 으째 이래?
몸을 일으키는 대식.
머리를 흔드는 재현.
뒷 인기척에 남편이 놀라 돌아보고 할말을 잃은 듯 멍청하게
쳐다본다.
남편 실례지만.. 안..돌아 가셨어요 ?
<사이>
재현과 대식은 밥을 먹고 있고, 미스 황은 여전히 자고 있다.
죄 지은 듯,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아있는 부부장의사.
대식 하이고오 ~
산 사람하고 죽은 사람도 구분 못함시롱 무신 장의사디야 ?
같은 업계끼리 상당히 쪽팔리구만.
남편 죄송하게 됐구머니라.
개업한 지 을마 안돼가꼬.. 처음 보는 시체라 너무 반가워가꼬
그만...
재현 나머진요?
부인 (반갑게) 시체가 또 있어요? 어딨어요?
S# 59 어느 시골길 (아침)
아직 안개가 걷히지 않은 포근한 아침 시골길.
뿌연 안개 속에 일터로 나가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터덜터덜 한심하게 걸어오는 세 사람.
대식 근데 이 사람은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재현 너 어젯밤에 뭐 보고 소리 질렀어?
미스황 보긴 뭘 봐! 그냥 무서워서 소리 질렀지.
배고프다.
대식 잠만 퍼 자니까 그라지. 남 묵을 때 안 쳐먹고.
미스황 잠을 자면 그냥 잤지. 내가 퍼서 자긴 왜 퍼서 자!
힘없이 넓은 들판을 걸어가는 세 사람.
S# 60 장의사 앞
전부 기린처럼 목을 쭉 빼고 힘없이 걸어오는 세 사람.
장의사 앞에 어수선하게 서 있던 동네 사람들이 이들을 보고 깜짝 놀란다. 그 속엔 철구도 있다.
할아버지 한심한 놈들!
대식 으째 그라요. 우리덜은 무서움을 이길라고...
미스황 공동묘지에 담력 훈련하러 간 건데...
할아버지 (머리를 쥐어박으며) 죽은 사람이 무섭긴 무가 무서워.
산 사람이 더 무섭지. 쓸데없는 짓들만 하고 자빠져서...
대식 일을 하나도 안 가르챠중께 그라잖아요.
재빠르게 장의사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재현.
미스 양이 미스 황의 머리를 때린다.
대식모가 달려와 대식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할아버지가 대식을 때리려 하자 안 맞으려고 도망가는 대식.
쫓아가는 할아버지.
S# 61 장의사 창고 안
음악과 함께 어수선한 장의사 안.
관을 들고 장의사 안채로 가는 세 사람,
S# 62 장의사 마루 (또는 재현의 방안)
재현, 철구, 대식, 연이가 커다란 관을 앞에 두고 쪼르르
앉아있다.
연이는 키가 작아 관 위에 겨우 턱을 받치고 무릎꿇고 있다.
관 앞에는 필기도구가 놓여있고,
세 사람 앞에 또 다른 관을 두고 앉아있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등 뒤에는 임종, 종신, 속굉, 고복, 사자밥, 수시,
입관, 습, 염(소렴, 대렴), 입관, 성복 등의 장례순서가 쓰여진 종이가 붙여져 있고 수업시간표까지 보인다.
할아버지 사람이 죽을 때는 편하게 뻗어 죽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푸렇게 멍든 놈, 눈을 확 까뒤집고 죽는 놈, 앉아 뒤진 놈,
이를 앙다물고 가는 놈도 있다.
간경화로 죽은 놈은...
카메라 천천히 움직이면 팬티만 입고 관 위에 누워있는 뚱뚱한
대식의 모습이 코믹하게 보인다
할아버지 배가 띵띵 뿔어 터질 것 같어.
만지면 말랑말랑해서... 조금만 잘못하면
아홉 구멍에서 몽땅 오물이 쏟아저부러.
할아버지가 대식의 배를 손가락으로 찌르면, 연이도 따라 대식의 배를 손가락으로 찌른다.
간지러워 키득키득 움직이는 대식. 할아버지가 대식의 머리통을 '탁' 치면 웃음을 멈춘다.
할아버지 죽으면 시반이라고 해서 몇 시간 후 피부에 반점이 생기고
뻣뻣하게 굳는디, 약 묵고 자살한 사람은 굳지 않고 부드럽다.
목매달아 자살한 놈은...
카메라 천천히 빠지며 위로 올라가면 목매달아 있는 대식의 모습.
할아버지 혀가 쭉 삐져 나와 있다. (갑자기 혀를 쭉-빼는 대식)
이랄 땐 천천히 내려서 혀를 집어넣어야 하는디.
입 주위를 오랫동안 마사지를 하면 근육이 풀리면서 혀가
들어가게 된다.
(대식의 입주위를 마사지 해도 대식의 혀는 들어가지 않는다)
입 주위를 이렇게 계속 마사지를 하면 들어가는데.
그래도 혀가 들어가지 않으면...
손가락으로 대식의 혀를 세게 '톡' 치는 할아버지.
쏙-빨려 들어가는 대식의 혀. 키득키득 웃어대는 연이.
할아버지 (대식의 물건을 만지며) 창문이네 삼촌 죽을 때 보니까 사람이
썩을 때는 요 불알부터 썩어분다.
많이 쓴 놈일수록, 더 빨리 썩지.
장의사는 죽은 사람의 몸만 다룬 게 아니라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거다.
철구 좋은 말씀입니다.
할아버지 훌륭한 장의사문 귀신도 본다.
귀신과 장난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귀신과 놀 줄 알아야 장의사가 되는 거야.
대식 (누워서) 아... 훌륭한 뻥입니다.
대식의 부랄을 꽉 움켜쥐며 흐흐흐 웃는 할아버지.
몸부림치며 벌떡 일어난 대식이 화면을 가리면,
연이의 웃음 소리가 맑게 들리면서
S# 63 몽타쥬
음악과 함께 지전 만드는 것을 배우는 세 사람.
오려서 펴보면 지전이 모두 조각나 우수수 떨어져 버리고,
상여꽃에 물감을 들이고...
수의를 재단하고...
박음질을 하고.
서로 돌아가며 시신을 묶는 연습을 수없이 반복한다.
아주 푸른 하늘. 바람이 불어 잔풀들이 살랑거리는 높은 강둑.
넋이 나간 듯 혼자 앉아있는 재현.
재현의 뒤에서 아이의 웃음소리. 연이다.
바람이 부는 언덕에 앉아있는 두 사람.
뭉게구름들이 빠르게 움직인다.
<사이>
여전히 재현은 언덕에 앉아있고, 그 옆에는 연이 대신 소화가
앉아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재현, 한참만에 자리에서 일어나 재현의 뒤를 따르는 소화.
소화의 걸음걸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머뭇거리는 재현.
다정하게 걸어가는 두 사람.
S# 64 장의사 마루
비가 내리는 대청마루.
휴식시간인 듯 멍청하게 앉아있는 세 사람 위에 할아버지 음성.
할아버지 (소리) 살은 빨리 썩어불수록 좋고, 뼈는 아주 하얗게 남아있을수록 좋다. 옛날에 사람이 죽었다고 갔는디, 아직 안 죽었어!
S# 65 어느 방 안
할아버지 (소리) 할멈이 온통 방안에 똥칠을 해서,
냄새난다고 가족들은 밥만 집어 넣어불고,
꼴방에 가둬 놓은 거야.
한참동안 몸을 닦고, 새 이불 가져오라고 해서 깔고 눕혀 놓응께.
금방 숨이 넘어갈려는 할머니가 두 눈에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 거야.
할아버지 음성 위로 다큐처럼 움직이는 카메라, 방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산발을 하고 누워있는 할머니. 씻어서 깨끗한 이불에 눕히면, 할머니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숨을 거두는 할머니.
S# 66 장의사 마루 (밤)
마루에 멍청하게 앉아 책을 보며 인사말을 외우는 대식과 철구.
대식 천붕지통을 뭐라 여쭈까? 상사 말씀 여쭐 말씀이 없수..
철구 그저 하늘이 무너진 듯 하옵니다. 눈앞이 캄캄하옵니다.
살아있는 것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대식 고분지통을 뭐라 여쭈까? 상배말씀 여쭐 말씀이 없수.
철구 그저 땅이 꺼진 듯 합니다.
대식 귀신은 보았수?
철구 아직 못 봤습니다.
대식 언제나 귀신과 놀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철구 세월이 가면 나타나시겠죠.
귀신을 만나면 뭐라 여쭈리까?
언제 나타났는지 철구와 대식을 보고 있는 술 취한 할아버지.
대식 니기미 씹이라 말하겠습니다.
대식이 고개를 숙였다 드는데 할아버지가 대식의 뒤통수를 친다.
할아버지 인사말에 씹이 왜 들어가냐?
철구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
저희도 일을 다 배운 것 같고, 이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가 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사람 죽는 것은 하늘의 기운이라니까!
한 명도 안 죽다가 갑자기 한꺼번에 죽기도 한다고.
일을 하고 안하고는 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여!
철구 그렇다고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시도는 해봐야죠.
구체적으로 협력업체를 구해 장의일을 일체로 만들고 열심히 홍보를 하는겁니다.
할아버지 그람 시방 일을 다 배웠다고? 니는 삥아리 눈물만큼도 몰라!
(방으로 들어가며) 이일로 돈을 벌려고...쯔쯔.. 미련한 것들.
아직도 뭘 배워야 하는 것도 모르는 것들이!
S# 67 곰다방 안
여전히 싸구려 음악이 간지럽게 흘러나오는 다방 안.
미스 양과 미스 황은 낮잠을 자고 있고, 대식이 들어오며,
대식 미스 황! 일로 와 봐!
미스황 왜... 에! (자리에 앉으며) 무언데.
(대식이 건넨 예쁜 주머니를 펴보며) 금반지네.
누구 줄라고?
대식 넌 아직도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미스황 우와. 나 줄라고?
오빠 정말 나 사랑하는구나.
대식 사랑은 무슨... (미스 황의 다리를 만지며)
그냥 연애 한 번 하자는 거지.
대식의 손을 치우는 미스 황. 재현과 철구가 다방에 들어오자
황급하게 반지를 뺏어 숨기는 대식.
미스황 왜 그래? 창피해서 그렇구나.
부끄럼 타긴.
미스황 (자랑하며) 대식 오빠가 나한테 금반지 선물했다.
재현 금반지?
미스황 보여줘 봐. 이뻐. 보여줘 봐.
(대식의 손에서 반지를 빼앗으며) 이쁘지?
철구 저번에 없어진 금니빨 아니야?
대식 금니빨은 무슨 금니빨?
재현 그런데 왜 숨겨!
대식 숨기긴 누가 숨겨. 금니빨은 이사람이 훔쳤잖아.
철구 웃기고 있네. 미스 황 이게 뭔 줄 알아?
죽은 시신 금니빨 훔쳐서 만든 반지야. 어휴 무시라.
미스황 (자리에서 일어나며) 산사람 이빨이면 어떻고, 죽은 사람
이빨이면 어때? 금반지라는 게 중요하지.
철구 병원일 뺏어올 방법을 찾았어.
재현 뭔데?
철구 병원과 똑같이 하는 거야.
가족들이 집에서 손님을 받기 싫어서 병원으로 간다고.
그래서 우리도 떡집, 사진관, 화원, 식당까지 묶어서 "장의일체"로 하는 거야. 어때?
대식 할아버지 말 믿고 죽은 사람하고 인연 어쩌고저쩌고 하문서
기다리는 것보단 낫겄네.
재현 할아버지가 하라고 할까?
갑자기 차가 끼익... 급정거하는 소리. (씬23과 똑같이)
창 밖으로 보면 수십 번 굴러 떨어지는 우체부.
S# 68 다방 앞 거리
재현, 대식과 함께 철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을 흔들자 갑자기 철구의 손을 움켜잡는 우체부.
눈을 번쩍 뜨더니 고맙다는 듯 씩 웃는다.
고개를 몇 번 흔들던 우체부가 자연스럽게 일어나 걷다가 자전거를 끌고 가다 쓰러져 버린다.
뛰어가 우체부를 다시 흔드는 철구. 코밑에 손을 대어 보더니,
철구 죽었어!
믿기지 않는 듯.....우두커니 서있는 세 사람.
대식 (재현을 보더니) 너, 으째 인자 기절 안하네?
재현 .......!!
우체부를 안고 벌써 떠나고 있는 철구.
S# 69 우체부집 마당
장례준비를 위해 어수선하게 서 있는 우체부집 마당.
철구는 바쁘게 상주들과 얘기를 하고 있고...
S# 70 우체부집 방 안
우체부 시신 앞에서 가족과 대치하고 있는 철구, 대식, 재현.
대식 참나 ~. 수의를 안 입히는 게 어딨다요?
죽은 것도 서러운디, 빨개벗겨 보낼라고 그라요!
가족1 평생 편지 배달해분 사람이니께...
우체부복 입혀주문 하늘나라 가서도 편지도 배달하고...
대식 참나, 염라대왕이 편지 쓴답디까?! 말 되는 소릴 해야제.
가족 수의값 땜에 그런가? (돈을 꺼내며) 돈은 줄 테니까..
재현 장례에도 예와 법이 있습니다.
굳이 삼베로 수의를 입히는 이유는 사람의 살은 육탈이라고 해서
빨리 썩어야 좋다고 해서 예로부터....
뒤에서 들리는 할아버지 소리.
할아버지 그냥 우체부복 입혀디려라.
대식, 재현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쳐다보며)예?!
할아버지 우체부복 입혀디리라니깐.
철구 할아버지. 장의에는..
할아버지 길 떠나는 망자가 중요허지, 머시가 중요혀 !
싸게 입혀디려.
철구 안됩니다.
할아버지 이게 예와 법이야! 멍충이 같으니라구.
철구 이 일도 우리가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인데
수의라도 팔아서...
할아버지 (갑자기 화를 내며) 죽은 사람한테 옷 한 벌 팔아!....
이런 호로 자식!
철구 (냉정하게) 그래도...먹고 살자고...지금까지 할아버지 밑에서..
지금까지 장례 두 번 치러서 번 게 얼마나 됩니까?
그리고, 사실 죽은 사람이 뭐가 중요합니까 산 사람이 중요하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긴장하던 재현과 대식,
입을 다물고 어쩌지를 못한다.
할아버지 이일로 돈벌이를 하겠다고! 내 눈 앞에서 썩 꺼져!
나는 더 가르칠 것이 웃으니까.
재현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 필요웃다! 다 필요웃어!
철구 (수의를 집어던지며)......저도 배울 것이 없습니다.
수의를 집어던지며 밖으로 나가는 철구.
우체부 복을 입혀 입관되는 우체부. 관이 닫히면, 암전.
S# 71 장의사 앞 (밤)
비가 내리는 장의사 전경.
장의사 앞으로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철구다.
장의사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서있다.
S# 72 재현의 방 (밤)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대식. 성냥불을 콧바람으로 끈다.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는 재현과 대식, 담배 한 대를 가지고
나눠 피우고 있다.
재를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고개를 쳐들고 담배를 피는
대식.
조심스럽게 재현에게 넘겨진다.
S# 73 장의사 앞 (밤)
비가 내리는 장의사 앞 전경.
철구는 어디로 가버리고 없고 빗줄기만 거세게 내린다.
S# 74 곰다방 앞
맑은 날, 다방 안으로 들어가는 낯선 사람들.
그 속에는 경찰도 보인다.
S# 75 곰다방 안
다방 의자 여기 저기에 낯선 사람들.
오늘 따라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미스 황과 미스 양이 신이 나서 분주히 움직인다.
철구 (자리에 일어서며) 자, 한자리로 모입시다.
미스 양. 여기 커피 한 잔씩 쭉 돌려요.
저번에 제가 다들 말씀 드렸듯, 한마디로 공생하자는 겁니다.
아... 서로 모르시는 분이 있어요?.
여기 카멜레온 비디오가게 김사장님. 만복식당 정사장님.
불타는 떡집 최사장님.
(무표정한 시골 사장들) 경찰서 김경장.
김경장은 교통사고가 나면 바로 우리 장의사로 연락을 할겁니다.
S# 76 곰다방 앞
다방 앞에서 기웃거리던 대식이 조심스럽게 다방 안으로 들어간다.
S# 77 곰다방 안
다방 문을 열고 대식이 들어오면.
철구 이쪽으로 앉아!
떡집 사장님! 떡이 아무리 맛있으면 뭐합니까?
설, 추석, 명절 빼면 밥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 아닙니까.
만복식당 사장님은 또 어떻습니까?
파리만 날리면서 오늘은 오른쪽, 내일은 왼쪽 손가락 빨겁니까!
(낮게, 심각하게) 생각해보십시오. 이쪽 국도에서만
한 달에 사고가 20건은 되요.
이걸 다 어디서 처리합니까. 병원으로 가요.
요것만으로도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먹고 사는 겁니다.
이건 김경장이 해결합니다.
목에 힘을 주는 김경장.
최사장 (철구에게) 그러니까 자네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우리덜 먹고 살게 해주겠다 이거요?
철구 물론이죠. 먹고 살기만 합니까.
땅도 사고 아가씨들이랑 연애도 하고...
무표정하던 대식의 표정이 밝아진다.
미스양 저희도 회원 하무 으짜요. 커피 싸게 배달해져부께요.
철구 좋아요. 커피는 반값으로!
오늘 커피 값도 사업시작을 축하하며 곰다방에서 대접하는 것으로
하고,
(커피를 들며) 우리 모두 잘해보자는 뜻으로 건배 한 번 합시다.
S# 78 장의사 마루
썰렁한 장의사 안채. 혼자 마루에 앉아있는 재현.
마루에 누우면 할아버지가 기침을 하며 집안으로 들어선다.
할아버지가 들어오자 벌떡 앉았던 재현,
할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자 다시 마루에 눕는다.
S# 79 시장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시장 안.
재현과 고모가 시장을 보고 있다.
시장 곳곳에 붙어있는 찌라시, <세계 장의복지협회-회장 판철구>
고모 이게 홍어잖아. 홍어좆 봤어?
음매, 재현이것 하고 똑같네.
킥킥거리는 고모. 반응이 없는 재현.
재현은 시장 저쪽에 새로 개업한 <세계장의복지협회> 가게를 보고 있다. 가게 앞에 놓여져 있는 개업 축하 화분들.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고모 태풍이 온다더니...
시장 가판대 앞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는 소화의 뒷모습,
저녁 햇살을 받으며 시장 바구니를 들고서 쓸쓸히 시장을
빠져나가는 소화.
소화를 발견하는 재현, 한참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서 있다.
고모 이 쥑일 놈아 너는 아직 여자도 없냐! 빨리 장가를 가야지.
아무 것도 못하면 연애는 할 줄 알아야 할 것 아니여.
다리를 벌리고 다니는 여자도 쎄였는데....
멀어져가는 고모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재현.
S# 80 화원 앞
건너편에서 화원을 지켜보고 있는 재현.
아무도 없는 화원 안.
재현이 자전거를 끌고 화원 앞으로 다가가려 하자 작은 나무
사이로 소화의 모습이 보인다.
재현이 멈칫거리는 사이, 일시에 불어오는 바람.
머리 위의 나무들이 세찬 바람에 휘날리더니 나뭇가지가 꺾여
발아래 떨어진다.
화원 앞의 나무들이 바람에 쓰러질 것 같다.
급하게 밖으로 나오는 소화.
비바람에 휘날리는 나무를 안고 들어가는 소화의 모습은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갑자기 장대처럼 쏟아지는 비.
S# 81 장의사 가게 안
창으로 보이는 읍내거리.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다.
실없는 장난을 하고있는 할아버지.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오는 연이할매.
연이할매 여......여기 여....연이 안 왔어?
할아버지 안 왔는디!
연이할매 이 망할 것! 또 즈그 아부지 묘지에 갔구만!
장의사 안을 둘러보고, 급하게 뛰쳐나가는 연이할매,
제 정신이 아닌 듯 하다.
연이할매를 따라나가는 할아버지,
그러나 연이할매는 저만큼 달려가 버리고 없다.
비가 내리는 텅 빈 장의사 밖 거리.
S# 82 화원
화원 안으로 나무들을 옮기고 있는 재현.
소화가 화원 안에서 급하게 나와 또 다른 화분을 든다..
두 사람의 모습은 비 때문에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나무를 들고 옮기다가 소화와 부딪치는 재현.
소화가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져 깨지면,
뿌리가 드러난 화초를 주워드는 소화.
거센 빗물에 뿌리에 붙은 흙들이 쓸려나간다.
나무를 움켜잡고 서있는 소화.
화분을 옮기려던 재현이 불안하게 소화를 쳐다본다.
<화원 안>
굉음을 내며 유리창을 때리는 장대비, 급히 안으로 화분을 옮기는 재현.
소화 아무데나 놔도 돼!
태풍만 지나가면 다시 밖에 내놔야 하니까!
바람에 꺾일 듯 위태위태한 우산을 들고, 허둥대며 걸어오는
연이할매를 발견하는 재현.
달려나간 재현이 연이할매에게 큰소리로 얘기하지만 빗소리에
묻혀 알아들을 수 없다.
화분을 들고서 연이할매와 재현을 바라보는 소화.
재현이 급하게 자전거에 올라타 힘겹게 패달을 밟는다.
뒤를 돌아보는 재현.
멀어져가는 뿌연 화원.
걱정스레 지켜보는 소화의 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S# 83 세계장의복지협회
창고 같은 좁고 구석진 공간에 <세계장의복지협회>라고 간판만
크게 붙인 가게. 전화벨 소리.
커피배달 온 미스 황과 함께 앉아있는 철구와 대식.
찌르릉 울리는 전화. 서로를 쳐다보는 대식과 철구.
전화를 받는 철구.
철구 사고요? 어디요?
(대식에게) 사고래! 빨리 비상연락망 돌려!
S# 84 들길
힘겹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의 모습 뒤로,
저 멀리 철구의 봉고차가 보인다.
S# 85 봉고차 안
<불타는 떡집>이라고 쓰여진 글자 위에 좀 엉성하게 종이를 대어 <세계장의복지협회>라고 덧붙인 봉고를 타고 있는 사람들.
긴장한 표정.
김사장 을매나 죽었다요?
아무도 대답을 않는다.
김사장 난.... 아직까지 사람 죽은 거 본 적 없는디..
차창 밖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의 모습이 보인다.
철구 낙천에서 어떻게 알았지?
박사장, 더 밟어!
나란히 달려가는 자전거와 봉고.
봉고가 속력을 내더니 앞서 달려간다.
저만치 멀어져 힘겹게 빗속을 달리는 재현의 자전거.
S# 86 강둑
저수지 둑과 같은 높은 언덕길.
비바람 속에 힘겹게 걸어가는 연이,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아갈 것만 같다. 가까스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발을 옮기지만 이내 바람에 자꾸 뒤로 밀려가고,.
무수한 총탄과 같이 쏟아지는 빗방울.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는 연이. 한 손에는 잎이 몇 남지 않은 들꽃이 쥐어져 있다.
다시 한 번 힘겹게 두 세 걸음을 옮기지만 이내 비틀거리며 쭉
뒤로 밀려간다.
S# 87 국도
봉고차의 시점으로 보이는 국도의 사고 현장.
멈춰서는 봉고차.
봉고에서 내리자마자 흥분되어서 뛰어가는 일행, 미끄러지듯
언덕 밑으로 내려간다.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고통스러워하고,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있다.
봉고 안으로 시체들을 옮기는 일행.
자신의 머리에 난 피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여자.
공포에 질려 다리를 절뚝거리며 논으로 도망가는 남자.
온몸에 피를 묻히며 분주히 뛰어다니는 철구 일행.
버스 창틀에 머리를 박고 밖을 노려보는 시체,
대식과 눈이 마주치자 대식을 노려본다.
대식이 유리창을 가만히 두드리자 <나 죽었다>는 듯 슬며시
눈을 감는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여자가 자꾸 철구의 바지를 잡아당기는데...
허리띠를 잡고 몸부림치는 철구.
할 수 없이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켜 업고 가고....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구분되어 하나하나 시체가 옮겨지고...
마지막 시체를 들기 위해서 거드는 대식과 철구.
흰 천에 덮혀있는 시체를 옮기려고 발을 드는 순간,
양쪽 발만 뚝 끊어져 철구의 손에 잡혀 있다.
엠브런스에 하나하나 실어지는 시체.
어이가 없다는 듯 서있는 사장들과 철구, 대식...
떡집사장 요것이 아닌데...어찌게 말 좀 해보지...
엠브런스가 출발하기 시작한다.
S# 88 달리는 봉고 안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비맞은 참새 마냥 쭈그리고
봉고차 안에 모여 있는 일행.
철구 엄청 큰 태풍이네. 뭔 놈의 비가 이리 많이 내려.
떡집사장 전부 병원으로 가버리는디. 망해부렀네.. (철구를 노려보며)
철구 일단 병원으로 따라가 봅시다.
비디오사장 난 안할라요. 아무나 시체로 밥먹는 짓은 못하는 거여!
권리금이나 줘요.
대식 뭔 권리금? 나 모르게 권리금을 처먹어! 나쁜 쉐끼!
철구 고건 나중에 얘기하고, 빨리 따라가 봅시다.
서서히 엠브런스를 따라가는 봉고차. 차들이 엉망으로 엉켜있는 도로. 작은 길로 차를 돌리는 봉고차.
<사이>
미묘한 분위기의 봉고차 안,
여전히 흥분되어 버스를 타고 가는 일행.
자전거를 타고 옆으로 지나가는 재현.
대식이 발견하고 창문을 연다.
대식 (소리를 지르며) 야, 장재현! 일 다 끝났는디 넌 뭐땀시 가냐?
재현 (소리를 지르며) 연이가 없어졌어!
대식 (재현의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안 들린다) 쟤가 뭐라 그러는거여?
뭐라고?
재현 연이가 없어졌다고!
빠르게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버리는 재현.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하게 재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대식.
철구도 무심히 밖을 쳐다본다.
누런 흙탕물로 가득차 엄청나게 불어나버린 강.
강에 떠내려가는 검은 물체들.
자세히 보면 검은 관이다.
철구 (관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래지며) 차 세워! 박사장!
대식 뭔 소리여? 빨리 따라가야재.
놀란 표정으로 창 밖을 가리키는 철구.
모두 놀라서 차창에 바싹 기대어 지켜보는 사람들.
강을 따라 떠내려가는 서너 개의 검은 관.
S# 89 강가
퍼붓는 빗줄기. 넘쳐나는 강물 위를 수십 개의 관들이 둥실대며 떠가고 있다.
웅성대며 쳐다보고 있는 일행들.
입이 벌어져 다물지 못하는 대식.
주먹을 꽉 움켜쥐는 철구, 차문을 연다.
S# 90 공동묘지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떨어지는 폭우. 무너져 버려 아수라장이 된 공동묘지.
S# 91 세계장의복지협회 (철구의 장의사) 앞
거리를 가로막은 채 쌓여 있는 수십 개의 관들.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는 철구와 대식.
가족의 시신을 찾으려고 관들 주위에서 정신없이 맴도는 사람들.
살짝 관을 열어보고 토악질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다.
경찰들은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고,
한쪽 편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황지관에게 몰매를 놓고 있다.
사람 1 이 엉터리 지관 놈아! 이게 뭐냐구?
사람 2 니가 명당자리라며?
자손 대대 천 년 만 년 번성할 자리라고 그랬잔여?
철구와 대식에게 시신들을 찾아 달라고 들볶는 사람들.
사람 3 느그들은 뭐여, 주인을 찾아준다고, 이쪽으로 가져와서.
대식 (비에 쫄딱 맞은 새앙쥐 꼴로 부들부들 떨며) 어떻게 좀 해 봐?
마을사람1 마을에 흉조가 들었당께.. 그라지 않고선.....
마을사람2 연이도 아직 못찾았다문서..
비에 젖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털썩 주저앉는 철구.
몇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우산을 받쳐들고 도착하는 할아버지.
뒤따라 우루루 달려오는 사람들.
철구, 대식 (울먹이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황지관을 가리키며) 저 영감탱이 잘못만은 아니여.
(감격하는 황지관) 죽은 사람이라고 비맞으면 좋겄는가.
커다란 비닐로 관이 덮이면
건물들의 처마 밑에 비를 피하는 사람들.
S# 92 동 세계장의복지협회 앞
눈부신 햇살. 멀리 매미소리가 쟁쟁 들려온다.
쭉 늘어서 있는 관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을 향한다.
관을 유심히 살피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미자네 증조 할배!
철구, 종이에 적힌 이름표에서 미자네에 밑줄을 주욱 긋는다.
대식, 철구 (큰소리로) 미자네!
너무 좋아하며 크게 대답하고 우루루 달려와 관을 챙기는 미자네 가족들. 박수치는 주변 사람들.
이런 식으로 이름이 호명되고 관을 찾는 마을 사람들의 풍경.
부부장의사 (손을 들며) 근데, 영감님, 그걸 어떻게 알아요?
할아버지 (너털웃음을 웃으며) 이 사람들아... 묻은 사람이 바로 나여!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겄는가? (다음 관을 가리키며)
성자댁 남편!
대식, 철구 (큰소리로) 성자댁!
대식 (조용히) 할아버지, 이거 제대로 찾은 거여요?
할아버지 맞을 거여! (뒤돌아 서며) 안 맞으면 어때?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거, 정성스레 묻어주면 되지.
누구 거는 따져서 무해?
이때 연이할매와 재현이 연이의 시신을 들고 사람들 사이로
나타난다. 보자기에 싸여 발가락만 보이는 연이.
기뻐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일순간에 젖어든다.
앞서서 사람들 틈을 빠져나가는 할아버지.
철구와 대식도 뒤따른다.
S# 93 장의사 가게 안
장의사 앞을 지나는 방역차.
하얗게 퍼지는 소독 연기.
탁자 위에 펼쳐진 작고 예쁜 연이의 흰 수의.
할아버지가 수의를 챙기며
할아버지 뭐해! 일어나지 않고. 관 챙기고..
가자, 갈 길이 멀다.
재현 저는 안 갈래요.
관을 들려는 대식이 다시 관을 내려놓고 눈물을 닦는다.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재현.
철구는 고개를 쳐들고 천장만 보고 있다.
재현 ... (고개를 돌리며) 저 장의사 그만둘래요.
할아버지 모자란 놈들. 장의사는 눈물이 말라야 되는 거여.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 혼자 관과 수의를 챙겨들고 나가는
할아버지. 쓸쓸하게 걸어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재현.
S# 94 화장터
을씨년스러운 화장터 굴뚝으로 솟아오르는 까만 연기.
건물 앞, 바람에 하늘거리는 들꽃과 대조적이다.
화장터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불길에 비춰지는 할아버지의 얼굴.
화장터 멀리 서있는 세 사람.
S# 95 강가
태풍이 씻어낸 맑은 강가.
강물에 뿌려지는 하얀 가루.
대식은 여전히 울고 있고 연이할매는 실성한 듯
작은 소리만을 내고,
멍청하게 강물을 바라보는 재현.
뭉게구름이 정처 없이 강물 위를 흐르고,
두 손을 곱게 가슴에 올려놓고 물 위에 떠있는 연이.
어딘지 모르게 편안해 보인다.
한 손에는 꽃잎이 거의 다 떨어져간 들꽃이 쥐어져 있다.
가볍게 부는 바람에 마지막 꽃잎이 떨어지자 천천히 눈뜨는 연이.
S# 96 장의사 안채 (밤)
장의사에 혼자 앉아있는 재현.
물건이 넘어지는 듯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며 할아버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온다.
고개를 숙이는 재현. 말없이 안채로 들어가는 할아버지.
재현이 힘없이 밖으로 나간다.
S# 97 들판 (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
인기척을 느끼고 살짝 고개를 돌려보면 소화가 탄 자전거가
바로 옆으로 다가와 있다.
재현, 애써 외면하며 속도를 낸다.
그러나 다시 금새 따라붙는 소화.
이러길 몇 차례 반복하며 두 사람의 자전거가 가로수 사이로
사라져간다.
S# 98 화원 앞 (밤)
자전거를 끌고 나란히 조용한 밤거리를 걷는 두 사람.
소화 너.... 장의사 계속 할거니?
재현 아니, 그만 둘려구.
소화 난 니가 그 일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재현 왜?
소화 .................... (무엇을 감추듯이 아무말 않는다)
화원 앞에 도착한 두 사람.
소화 차 한 잔 마시고 갈래?
(머뭇거리는 재현을 향해) 괜찮아... 들어와
재현 아니야. 내일 올게!
소화 (화원 문을 열며) 맛있는 커피 있는데....
재현 내일.
소화 왜? 내가 무섭니?
자판기 커피만큼 맛있게 할 수 있는데.
웃는 두사람.
재현 갈게!
자전거를 끌고 화원 앞을 떠나는 재현.
화원 안으로 들어가는 소화. 화원 안에 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우두커니 서 있는 소화.
밝은 불빛에 화사한 꽃들.
S# 99 장의사 가게 안 (밤)
넋을 놓고 앉아있는 장의사 안의 재현.
장의사 앞을 미스 황이 뾰쪽 구두를 신고 위태롭게 지나가고,
흰 소복을 입고 너무 예쁜 모습으로 멀리서 걸어오는 연이.
연이를 발견한 재현, 아직 표정이 없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장의사 앞으로 걸어오는 연이.
장의사 안을 들여다보고 웃는다.
재현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지만 고개를 흔들며 웃는 연이.
다시 한 번 자랑을 하듯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내려오는
연이, 화사하게 웃는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연이, 비눗방울만 하나 남는다.
힘찬 음악과 함께 꼬마 귀신 10여명이 흰 수의를 입고 장의사
앞에 나타난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는 재현.
아이들 뒤에 첫 장의에 죽은 과부가 아이들을 통솔하듯 뒤따른다.
장의사로 들어오려던 아이들을 쫓는 시늉을 하자,
소리를 지르며 어둠 속으로 도망가는 아이들.
어떤 아이는 엿먹으라는 손짓을 하는 놈도 있다.
죽은 과부가 손짓을 하는 아이의 뒤통수를 치면,
도망가는 아이들.
F. O.
S# 100 장의사 안채
씬 12와 같이 철구가 들어왔던 시선 그대로....
유리창에 검은 글씨로 "장의 일체. 수의 염가. 24시간 대기. 친절봉사" 등이 선팅되어 있는 장의사. 예전보다 단장된 느낌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여는 철구 부인.
장의사의 내부가 천천히 보여진다.
뒤로 통하는 작은 문에서 새어나오는 빛.
문을 여는 철구 부인, 아이 넷과 함께 안채로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간다.
재현 어떻게 오셨어요?
철구부인 여기 혹시... 판철구씨라고?
재현 판......철..구?
철구부인 여기 계시는 게 맞죠?
재현 지금은 안 계시는데...
안채에서 나오는 할아버지. 철구 부인과 아이들을 본다.
할아버지 (재현에게) 빨리 철구 데려와라.
어리둥절한 재현.
할아버지 싸게 안 불러오고 뭐한다냐?
재현 예? 예......
장의사 문을 나서는 재현.
S# 101 세계장의복지협회
꽃을 접고 있는 대식과 철구.
대식 장의를 할 수록 아침에 물건이 안 서. 고자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다간 장가도 못 가것다. 시체 만진 손으로
여자 거기 만지면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어.
철구 미스 황은 더 좋다고 그럴거야.
대식 씨펄.. 보자보자 하니까 미스 황을 무슨 바보로 알아.
만날 이런거나 만들고 있으면 뭐해? 일도 없는데.
철구 새로운 방법을 연구중이니까 기다려봐.
대식 또 뭔 사기를 칠라고? 이젠 동네 사람들 보기도 창피스러
죽겄는데.
사람들이 우리 보고 또라이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여.
니미럴, 이럴 줄 알았음 낙천에 그냥 있는 건디..
지금이라도 안 늦었응께,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철구 무슨 낯으로..
대식 그건 그려....
누군가 문 여는 소리에 쳐다보는 두 사람.
S# 102 장의사 마루
재현을 따라 장의사 안으로 들어오는 철구,
쭈볏쭈볏 대식도 따라온다.
대청마루에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던 아이들.
철구를 보자 아빠를 부르며 뛰어온다. 깜짝 놀라 아이들을
부둥켜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철구.
철구부인 (눈물을 흘리며) 여보 이제 그만 울어요. 제가 잘못 했어요.
다시는 도망 안 갈게요.
대식 어, 무야? 다 죽어부렀대매. 완전히 거짓말이네?
철구부인 이 사람, 전에도 한 번 그랬어요.
대식 (씩씩거리며) 정말 나쁜 사람 아냐?
울고 있는 철구를 보고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대식.
코를 훌쩍거리다 손등으로 쓱 닦는다.
철구부인 (철구에게) 당신을 찾아 3개월이나 헤맸어요.
<사이>
밥상에 앉아 밥을 먹는 할아버지와 대식, 재현. 철구의 식구.
작은아이 아빠! 돈 많이 벌었어?
철구 ...
큰아이 (작은아이를 쥐어박으며) 돈 벌기가 쉬운 줄 알아? 임마.
철구, 아이들의 말에 묵묵히 밥만 먹는다.
작은아이 아빠!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먹어!
할아버지 (철구에게) 어디, 일은 좀 했냐?
철구 ....... 한 건도 못했습니다.
할아버지 병원 영안실에 자리가 하나 났다는디..
대식 오매, 그 일은 지 평생 소원인디.
할아버지 (한심하다는 듯 대식을 노려보곤) 넌 구멍가게나 지켜!
어린 것들도 있는디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되지 않겄냐.
고개를 푹 숙이는 철구.
S# 103 화원 앞
가로수가 무성하게 자란 화원 앞 거리.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 화원 앞을 스쳐지나가지만
소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S# 104 병원 복도
병원 복도를 혼자 걷는 재현.
계단을 내려 지하실로 향하면 음침한 지하 통로가 보인다.
S# 105 시체실
지하통로를 지나 커다란 문을 밀고 들어가면 벽에 시체를 모신
곳이 보이고,
한 쪽 구석에 간이 칸막이가 보인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칸막이 안을 들여다보면,
칸막이 안에는 두 구의 시체가 흰 천으로 가려져 있고,
의사 같은 흰 가운을 입고 시체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철구.
재현 형! 그러고 있으니까 폼 난다. 꼭 의사 같네.
철구 왔어? 이리와 봐. (시체를 가리키며) 이 여자 이쁘지?
재현 (처녀의 얼굴에 꿰맨 자국) 형이 한 거야?
철구 아니! 이게 내 작품이야.
아주 엉망으로 꿰맨 시체, 재현이 웃는다.
두 사람이 영안실을 걸어나오며.
철구 영안실에는 교통사고로 오면 VIP라고 불러.
갑자기 죽어서 돈이 많이 들거든.
좀 벌이가 짭짤하지.
노인들이 죽으면 땡감이라고 부르더라.
수의까지 다 준비해 놓으니까 돈이 안 되거든.
재현 교통사고 환자들은 대개 꿰매야겠네.
철구 아니야. 돈이 없어 안 꿰매는 경우도 많아.
냉장고 속에 여자 하나가 있거든.
목이 떨어져 나갔는데 돈이 없어 그냥 두고 있어.
여기 있으니까 징해야.
며칠 전에는 오토바이 몰다가 끝장난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머리를 들고 옮기려고 하니까 머리가 전부 으스러져 바삭바삭
소리가 나더라구.
S# 106 병원 밖 의자
햇살을 받으며 의자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재현과 철구.
두 사람의 시선으로 너무도 화사한 병원 앞 뜰.
사람들의 일상이 나른하게 오래도록 보인다.
철구 사는 게 정말 별 것 아니야이?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죽어서 얼마 안 있어 냄새가 나니...
재현이 웃자, 철구도 웃는다.
재현 형 참 멋있어진 것 같다.
철구 나도 가끔 그렇게 생각해!
어이가 없다는 듯 마주보며 웃는 철구와 재현.
한참의 시간이 나른하게 흐른다.
병원 앞 사람들의 일상이 천천히 오랫동안 보여진다.
철구 대식인 요즘 뭐하냐?
재현 여전하지, 뭐..... 곰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미스 황만 쳐다보고 있어. 일은 많아?
철구 응! 한 달에 한 열 댓구 정도 하니까.
너는 계속 장의사일 할거냐?
재현 모르겠어. 생각해 봐야지.
지나치던 동료1(시체 꿰매는 사람)이 철구를 보고 다가온다.
동료1 야! 아까 니가 꼬맨 거 엉망이라고 다시 꼬매란다.
가족들이 난리가 났어.
철구 아이 씨팔. 또 들어가 봐야겠네. 무지하게 열심히 했는데..
S# 107 읍내 거리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
재현을 보고 웃는 연이할매.
철구의 아이들이 싸우면서 놀고 있고..
S# 108 오락실
오락실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재현.
S# 109 장의사 가게 안/앞
재현이 안으로 들어서면 할아버지가 장의용품을 챙기고 있다.
할아버지 ...........
재현 초상났어요? (거들며) 어딘데요?
할아버지 나 혼자 갈란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따라나서는 재현.
S# 110 거리
장의용품과 조등을 든 채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와 재현.
S# 111 화원 안 (밤)
재현 (화원 안으로 들어서는 할아버지에게)
왜요? 꽃 사시게요?
할아버지를 따라 재현이 화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침침한
화원 안,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두 세 명의 여자들이 화원 안쪽의 열려진 방문 앞에 서있고,
아줌마1 이틀은 지난 것 같구만.
가족도 없고 해서 동네사람들이라도 초상은 치뤄줘야지...
방안에 곱게 누워있는 소화를 한참동안 쳐다보고 서 있는 재현.
재현 (할아버지에게) 제가 할게요.
화원 앞에 근조라고 쓴 등을 거는 재현.
동네 사람들이 화원 앞에 천막을 친다.
벌써 술에 취해 비틀대는 사람들도 있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서는 재현.
소화의 머리에 놓인 베개를 치우고 가볍게 머리를 내려놓는다. 가지고 온 흰 천으로 몸 전체를 가린다.
조심스럽게 소화의 옷을 벗기는 재현.
흰 천 안으로 싸늘한 여자의 나신이 보인다.
흰 천을 조금씩 걷어내며 향탕수로 소화 몸의 여기저기를 씻는
재현.
흰 수의를 입고 곱게 누워있는 소화.
슬픔을 참으려는 듯 한참을 머뭇거리는 재현.
소화의 몸을 소렴포로 싸고 다시 대렴포로 싸서 발부터 묶기 시작하는 재현.
재현의 어깨가 들썩거린다.
한참동안 소화의 모습을 바라보던 재현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S# 112 화원 앞 (밤)
화원의 유리문을 열고 나오면 천막 안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이 먹고 남은 빈 상에는 빈 접시들과 먹다 남은 음식,
젓가락들이 상 위에 널부러져 있다.
천막 밖으로 백열전등 불빛이 힘겹게 어둠을 밝히고 있을 뿐...
재현이 천막 밖으로 나오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드는 재현,
어둠 속에서 흰 꽃가루가 내린다.
재현의 손에 수북하게 쌓이는 흰 꽃잎.
재현이 이상하다는 듯이 하늘을 보면 무수히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
S# 113 들길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 힘겹게 페달을 밟으면,
재현의 얼굴을 스치는 꽃잎들이 자전거 바퀴를 따라 용솟음치듯
휘날리고...
재현(소리)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떠나는 사람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S# 114 장의사 앞 (밤)
관 위에 앉아 마을을 내다보면 밖에는 이슬비가 내리고,
연이가 찢어진 우산을 들고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다.
살며시 웃는 재현.
재현(소리) 할아버지는 매일처럼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꿈꾸곤 했다.
S# 115 들판
재현(소리) 붉은 황토밭을 지나 꽃이 지천으로 핀 야산으로,
상여인지 꽃인지 사람인지 모를 산으로 날마다 떠난다고 했다.
그러나 좀처럼 이 세상을 떠나지 못했다.
재현의 소리 위에.
넓은 황토 들판. 저 멀리 상여소리와 함께 긴 장례행렬.
공포와 명정이 화면 가득 세워지더니 수십 개의 만장이
화면 전체를 채운다. 수많은 지전이 하늘을 날고,
갖가지 색의 만장을 앞세운 상여가 장관을 이루듯
초록의 보리밭을 길게 지나가고,.
상여소리의 선창이 울려 펴지면,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합창으로 불려지는 후렴소리.
상여 위에 재현이 올라가고, 상여를 흔들어대는 상두꾼들.
재현이 돈을 꺼내 상여에 매단다.
하늘 높이 지전이 흩날리고.
지전을 뜯어 하늘에 날리면 초록의 보리밭으로 여기저기 흩날리는 하얀 지전.
다시 상두꾼들이 상여를 흔들며 춤을 추듯 후렴을 하면,
붉은 황토언덕을 넘어가는 상여.
하늘은 파랗고 땅은 붉은데
이를 이어주는 만장과 사람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넓은 들판 저 멀리 짙은 산밑을 긴 행렬로 지나가는 장례행렬.
S# 116 야산
꽃이 지천으로 핀 야산.
산으로 들어가는 장례행렬. 지전은 흰 꽃에 가려 알 수 없고,
상여꽃은 분홍색 꽃에 가려 상여인지 꽃인지 알 수 없다.
장례행렬이 온통 산을 가득 메우고,
야산은 온통 활짝 핀 꽃으로 만발한 것만 같다.
산에서는 우렁찬 상여소리만 들릴 뿐 상여와 사람들을 구분해 낼 수 없다.
S# 117 읍내거리
천천히 올라오는 타이틀.
새롭게 단장되어 깨끗한 장의사.
장의사 문을 나서는 재현.
오토바이 뒤에 빨간 치마를 입은 미스 황을 태우고, 요란스럽게 마을을 가로질러 달리는 대식.
술에 취해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발견한 연이할매,
연이할매 어이, 염쟁이 영감! 어디 가는가?
난 쉽게 안 죽는다. 너보다 더 오래 살아서 너 죽는 것까지 보고 죽을란다. 헤헤헤...
할아버지 이 할망구야 인자 제발 죽어라. 더 살아서 무하냐.
연이할매 언제 송장 되나 기다리는 니 놈들 미워서 그런다 왜? 헤헤헤...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자전거를 타는 재현.
아주 즐겁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동네사람들의 표정이 다큐처럼 스쳐 지나간다.
두 손을 놓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재현.
< 끝 >
행복한 장의사
각본/감독 : 장문일
각색 : 박계옥/추창민
제작 : 우노필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