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0일 토요일

위기의 순간 영조의 편을 자청한 오명항





1728년 무신년, 영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전국적 반란이 일어난다. 반란의 주모자인 이인좌의 이름을 따서 ‘이인좌의 난’으로 불렸지만 무신년에 일어난 반란이란 의미로 ‘무신란’이라 부르기도 한다. 


영조 즉위 초, 전국적으로 괘서들이 나붙기 시작한다. 괘서의 내용은 영조가 사관에게 ‘흉악한 내용을 기록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그 핵심 내용은 영조가 선왕 경종을 독살했고, 영조가 숙종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 괘서가 발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종을 지지했던 세력이 경종의 복수를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청주에서 거병한 이인좌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반란의 움직임이 포착된다. 







조선 후기 양반들 사이에서는 물론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유행했던 정감록. 정부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했지만, 정감록은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일종의 예언서인 정감록의 핵심 내용은 ‘이망정흥(李亡鄭興)’이다.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내용인데, 힘겨운 삶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갈망했던 민중들은 이 내용을 믿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신란에 참여했다. 

1728년 3월18일 급보가 올라온다. 반란군의 우두머리격인 이인좌가 청주성을 점령했다는 소식에 다급해진 신하들은 영조에게 몽진을 청한다. 하지만 영조는 도성 사수를 단호하게 명한다. 이에 당시 병조판서였던 오명항이 스스로 토벌군을 이끌 것을 자청하고, 영조는 그를 토벌대 총대장으로 임명한다. 위기의 순간 영조의 편을 자청한 오명항은 사실 반란을 주도한 세력과 같은 소론에 속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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